루체른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운명〉 〈화염 속의 천사〉 연주
관객 압도하는 선율 '인상적'
생과 사 담겨있는 노래 묵직

▲ 30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를 소프라노 서예리, 안산·원주시립합창단과 협연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주제는 '운명'이다.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그의 교향곡 5번 다단조 Op.67에서 따왔다.

베토벤과 윤이상은 자신의 운명을 음악으로 승화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청력을 잃은 악조건을, 윤이상은 분단된 조국의 비극과 아픔을 음악으로 극복했다. 미하엘 잔덜링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개막일(3월 29일)과 이튿날 베토벤의 <운명>과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를 선보였다.

베토벤의 대명사로 알려진 교향곡 5번 다단조 Op.67. 1808년 오스트리아 빈의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곡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시기이자, 가장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한 시기에 태어났다. 베토벤은 '작곡에 대한 이 열정을 모두 작품으로 쏟아 내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빠바바밤~빠바바밤~'. 1악장은 세 개의 짧은 음과 하나의 긴 음으로 시작한다. 청중의 이목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순간이다. 미하엘 잔덜링이 지휘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도입부는 강렬함은 없었다.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만큼의 박력감을 기대해서 그런지 첫인상은 약했다.

▲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미하엘 잔덜링. /통영국제음악재단

1악장은 자신의 나약함에 저항하는 베토벤의 몸짓이 폭풍처럼 묘사됐다. 그에 반해 2악장은 잔잔한 호수같다. 베토벤이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로 했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시 어둠이 드리워지는 3악장을 거쳐 4악장이 몰려왔다. 베토벤의 고뇌가 승리와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휘자 미하엘 잔덜링의 손짓은 강렬했고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는 관객을 흔들었다. 압도적인 연주의 울림이 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졌다. '브라보' 관객은 환호했다.

이튿날 윤이상의 <화염속의 천사-오케스트라를 위한 메멘토&에필로그>가 연주됐다.

1991년 5월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전경의 쇠파프에 맞아 숨지면서 하루걸러 한 명씩 분신과 투신으로 죽어갔다. 윤이상은 1994년 민주화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을 추모하며 곡을 만들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간 부산시향,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으며 실연으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곡이다.

▲ 협연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서예리.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 시작 전 하얀색 옷을 입은 안산·원주시립합창단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화염속의 천사에 이어서 <에필로그>가 연주될 때 서예리 소프라노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고요함을 깨고 곡이 연주됐다.

"악보에서 불타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소음처럼, 극적으로, 거의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것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그것을 목격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깨달은 이들이 경악하고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남은 것은 말을 잃은 무력감입니다."(발터-볼프강 슈파러와 나눈 대화 중)

사회의 희생양이 된 학생들. 그들은 경찰의 폭력성에 분노했고 민주화를 외쳤다. 음악은 그들의 투쟁을 대변한 듯 혼란과 아픔이 뒤섞였다.

음악적 르포르타주 성격이 강한 화염 속의 천사에 이어 <에필로그>가 이어졌다.

지휘자 미하엘 잔덜링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손으로만 지휘했다. 서예리 소프라노와 합창단이 함께 소리를 냈다. 일종의 진혼곡이었다. 콘서트홀이 숙연해졌다. 영혼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관객은 숨을 죽이며 이를 지켜봤다.

윤이상은 인간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고자 음악적 재료를 극도로 단순화시켰고 집중도가 컸다. 곡이 끝나자 지휘자도 묵념을 하듯 한동안 적막을 유지했다. 그 울림은 한동안 계속됐다.

통영국제음악제는 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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