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아·임수현 작가가 말하는 소설
글 만들어지는 과정 이야기하고
각자 글 쓰는 이유·목적 털어놓고
진주 소소책방에서 핀 이야기꽃
조금 지난 일이지만, 요근래 진주 헌책방 소소책방에서 소설 강연이 두 번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작가회의가 지원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행사였는데, 마침 소소책방 조경국 대표와 인연이 닿은 소설가 정지아(54), 임수현(43) 작가를 부른 거죠.
정지아 작가는 26살이던 1990년 소설 <빨치산의 딸>로 등단 전부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그러고는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이 됐죠.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 2008년 올해의 소설상, 2009년 제14회 한무숙문학상을 받았고, 요즘에는 고향인 전남 구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임수현 작가는 하동이 고향입니다. 경상대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직장 생활을 잠시 하다가 서울로 갔죠. 2008년 <앤의 미래>란 소설로 문학수첩 신인상에 당선됐고요.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2011년 소설집 <이빨을 뽑으면 결혼하겠다고 말하세요>, 2012년 장편소설 <태풍소년>을 잇따라 내며 깊이 있는 사유와 그에 걸맞은 문장력을 갖춘 작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최근 소설집 <서울을 떠나지 않는 까닭>(문학수첩, 2018)을 냈습니다.
지역에서는 이런 소설가들에게 소설 쓰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잘 없습니다. 그래서 이분들 강연을 따로 정리해야겠다 싶었죠. 순수소설을 쓰는 작가들이니 이를 염두에 두고 읽으시되, 전반적인 글쓰기에 참고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임수현 작가는 소설을 '시작한다'가 아니라 소설이 '시작된다'고 표현합니다. 소설 쓰는 동기가 대체로 바깥에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임 작가에게는 이게 어떤 문장의 형태로 찾아온다고 합니다.
"어떤 문장들이 오면, 꼭 제목을 만들어서 따로 보관을 해 둬요. 저는 이것을 '서랍을 만든다'고 표현해요."
이 문장들은 줄거리이기도 하고, 소설의 첫 문장이 되기도 합니다. 임 작가에게는 이런 문장들을 담은 수많은 서랍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서랍들에 차곡차곡 문장이 쌓이면 서랍 하나가 한 편의 소설이 되는 겁니다.
정지아 작가는 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는 대개 어떤 인물로부터 시작해요. 어떤 인물과 관련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보통 그 장면 안에 주제가 숨어 있어요. 평소에 들어왔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 중에 그 주제에 합당한 것들을 끌어다가 쓰는 거죠."
이렇게 소설가들에게 소설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임수현 작가는 이를 '빙의'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소설을 쓰는 마음
"소설이란 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어떤 것, 예를 들어 일회용 종이컵, 동네 아줌마 아저씨, 일상 속 사물이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이에요. 그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마음, 이것이 소설을 쓰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정 작가의 말입니다. 소설을 쓰는 마음이란 표현이 좋네요. 나이가 들고 삶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마치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사실은 자신만의 생각으로 굳어 있는 거죠. 이런 마음으로 소설을 쓰면 전형적인 이야기, 전형적인 인물, 뻔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정 작가는 싫은 것, 이해를 못 하겠는 거라도 그게 왜 그런 지, 포기하지 말고, 찬찬히 오래오래 들여다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이는 소설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일에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라면서요. 익숙한 것을 버리고 머뭇거리는 생각, 이것이 소설을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소설도 사실은 작가의 경험과 삶의 이력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이기도 하죠. 그래서 임 작가는 결국 소설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소설은 사실 소설가 자신을 위해 쓸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동서양을 통틀어 지금까지 수많은 위대한 작가가 다양한 방식, 다양한 소재로 소설을 썼잖아요. 이미 선점된 이야기들 안에서 지금의 소설가들은 결국은 자신을 이해하고 대면하고자 쓴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네요.
◇빛나는 순간을 찾아서
"매일이 슬럼프 같아요. 한 번도 신나게 써 본 적이 없으니까."
등단 10년 차인 임 작가는 아직도 글 쓰는 게 두렵다고 합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게 독자에게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반대로 소설을 쓴다는 건 끊임없이 질문을 찾아가는 일 같아요."
삶에서 제대로 된 답을 찾는 것보다 제대로 된 질문을 찾는 게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자신을 다독이며 나온 소설이기에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거겠죠.
정 작가는 이렇게 표현을 하더군요.
"소설가는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서 세상에 보여주는 직업이에요. 그것으로 상처를 가진 누군가에 위안을 주는 거죠. 독자들이 작가가 포착한 그대로 느껴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거 같아요."
소설이, 특히 순수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요즘입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진지하게 삶을 숙고하고 힘겹게 문장을 이어가는 소설가들의 존재 자체가 더욱 빛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