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 속 풍경' 김정동 대표
여행작가에 매너리즘, 사람들에게 관심 돌려
증명사진 하나도 예약제

소년은 사진 찍는 게 유난히 싫었다. 정확히는 사진 찍히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추억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닌 기억의 한 컷에 머물 뿐이다. 그러다 문득 소년은 어렸을 때 모습을 훗날 떠올렸을 때, 그날을 추억할 만한 사진 한 장 없으면 왠지 허전하고 서운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잊힐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소년은 평소엔 찾지도 않던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별스럽지 않은 하루를, 지극히 평범한 경험과 사람을 그만의 시각으로 필름에 담았다.

소년은 늘 책가방에 필름 카메라를 넣어 다니며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됐고, 어렸을 때부터 삶의 뿌리를 내린 동네에 '파인더 속 풍경' 간판을 내걸었다.

창원 마산회원구 구암동에서 작은 동네사진관을 운영하는 김정동(42) 씨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과 마주하는 일상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카메라로 세상과 교감하다 = 정동 씨가 카메라로 처음 세상과 소통하던 지점은 사진관이 아닌 여행을 통해서였다. 그는 국내외 다양한 여행 잡지에서 여행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 카메라를 들었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 세상과 교감하는 여행 사진작가는 평소 활동적이며 모험을 즐기던 그의 성향과도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를 통해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유의 정취를 탐구하는 작업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일이 아주 좋고 재밌어서 하루 5시간 이상 자본적 없을 정도였어요. 언제 이런 일을 해보나 하는 마음에 돈을 많이 받지도 않았고, 밥만 먹어도 기쁘다고 생각했죠. 여행길에서 돌아와서도 집에 하루, 이틀만 머물다가 다시 떠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질리는 법. 집을 나설 때마다 묻어나던 설렘과 낯섦은 어느새 익숙함을 넘어 식상함으로 변해버렸다. 늘 새로울 것만 같은 일상에 매너리즘이 찾아온 것이다.

마침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일에 몰두하느라 미처 돌보지 않던 몸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일에 대한 흥미와 관심도 떨어졌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의욕은 온통 회의감으로 물들어만 갔다.

▲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서 사진관 '파인더 속 풍경'을 운영하는 김정동 대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진을 즐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문정민 기자

◇삶의 뿌린 내린 동네에 문을 연 사진관 = 몸과 마음이 지친 정동 씨는 분신처럼 지녔던 모든 카메라를 처분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온전히 채웠던 카메라와 사진을 이대로 놓기엔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정동 씨는 결국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는 드넓은 세상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기로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동네 사진관처럼 소소하고 따스한 일상이 넘나드는 공간을 상상해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랫동안 삶의 뿌리를 내렸던 동네에 작은 사진관을 열었다.

"마산 구암동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30년 넘게 살았어요. 한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가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이에요. 주민들이 아들처럼 친근하게 대했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진관이 오래된 동네에 문을 열자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30대 청년이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가 아닌 곳에 사진관 간판을 내거니 그럴 만도 했다.

정동 씨 발길을 붙잡은 건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다.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집 밖을 떠도느라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도 컸다. 아직 어린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진관을 운영하기로 스스로 6년이란 시간만 허용했다.

그렇게 정동 씨는 어릴 적 신나게 뛰어놀던 동네에 터를 잡아 이웃 속에서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녹였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다 = 작은 동네사진관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렸다. 목표마저 소박했다. 하루에 손님 한 명만 찾아 와도, 더도 덜도 말고 만 원만 벌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정동 씨는 단순히 증명사진 하나 찍어도 미리 예약을 받았다.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손님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다.

머리 모양, 눈빛, 표정 하나까지 손님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찍고자 하는 사진의 합의점을 이끌었다. 어느 사진관에서나 으레 정해진 촬영 횟수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웨딩사진 촬영도 마찬가지다. 틀에 박힌 스튜디오 촬영은 없다. 예비부부의 추억을 함께 좇아 연인 시절 주로 즐겼던 데이트 장소, 의미 있는 공간 등을 찾아 세상에 하나뿐인 그들만의 결혼사진을 찍었다.

촬영을 의뢰한 손님들이 웃으면서 즐겁게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정동 씨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그 흔한 인터넷 홍보도 안 하는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내 만족을 위해 일을 이었지만, 지금은 상대방 만족을 위해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저에게 촬영을 의뢰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생을 알게 된 느낌이에요"

◇쉽게 찍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사진 알리고파 = 멋진 풍경, 아름다운 전경, 맛있는 음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그는 동네사진관을 하면서 어느새 사람들 사이로 녹아 들어갔다.

첫째 아이의 돌잔치 사진을 맡긴 부부가 둘째 아이의 돌잔치 촬영을 의뢰했고, 군대 가기 전 증명사진을 찍고 간 청년이 제대 후 찾아오거나 5년 전 여권 사진을 찍은 이가 기간을 갱신하고자 사진관에 다시 발을 디뎠다.

모두 단순한 손님을 넘어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그러면서 사진관을 시작할 당시 동진 씨가 설정했던 6년 기한을 넘어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더 흘렀다.

사진관을 드나드는 이들이 늘면서 사진에 관심을 둔 이들도 많아졌다.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잘 찍는 방법을 묻거나 편집 기술을 궁금해했다.

애초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카메라를 활용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진관을 시작했던 그였다. 그 사이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진을 즐겼으면 하는 순간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도 추가됐다. 사진이 단순히 남에게 보여주기식과 미적 대상이 아닌 자신에게 의미가 있으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진은 예쁘고 잘 나왔단 개념으로만 볼 대상이 아니에요.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달라요. 사진에 관심 있고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이나 기술 등을 알려줌으로써 사진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요. 취미생활을 위해 사진을 배우려는 직장인뿐 아니라 특히 한창 꿈 많은 학생이 사진에 대해 알게 함으로써 진로를 결정하는 데 다양한 기회로 작용했으면 해요"

사진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기보다 진짜 필요한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정동 씨. 그의 최종 목표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이다. 엄숙하고 무거우며 작가들이나 이용하는 곳이 아닌,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고 전시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함께 보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곳.

정동 씨는 언젠가 그에게서 사진을 배우고 익힌 이들이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에 작품을 걸고 가족, 친구, 지인들과 느낌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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