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아프다고 누워있지 마라"

공대를 가고 싶었던 소년은 고2 겨울 방학 때 목표를 의사로 바꾸었다. 목사였던 이모부가 부산에서 운영하던 보육원을 방문한 후였다. 당시 1970년대는 공과대학이 인기가 많던 시절.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소년은 공대를 가서 조선업에 대해 배우고 싶었지만, 마음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공대를 가면 예를 들어 TV를 만들어 세상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의사는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 삶을 바꾸는 혜택을 주는 것. 그것이 더 보람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학생과학> 잡지를 읽으며 공학도의 꿈을 키우던 소년은 환자와 호흡하며 보람을 느끼는 길을 선택한다.

정형외과 전문의 안면환(67)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병원장 이야기다.

그런데 기계를 다루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의사가 된 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게 된다.

의사와 생체공학

안 병원장은 여러 전공 분야 중에서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은 덜 하지만,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분야라는 것에 끌렸다.

그중 척추가 흥미로웠다. 요즘에야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곳곳에 정형외과가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당시에는 관심이 덜한 분야였다.

"척추가 새로운 분야라는 것에 끌렸습니다. 특히 기형이나 측만증, 요통 등은 치료 효과가 드라마틱합니다. 개선 효과가 뚜렷하지요. 왜 아픈지 원인을 찾고 치료하면 환자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울고 와서 웃고 간다고 할 수 있어요. 척추가 휘어져 병원에 왔다가 수술 후 나아져 퇴원하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이 큽니다."

척추 수술은 위험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런데 막상 정형외과를 선택하고 보니 정형외과는 공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바로 '의료공학'이다.

"1988년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 한 한국인 의사를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척추외과 의사로서 환자 치료도 하지만, 기구를 개발하기도 하더군요. 인공 디스크를 만드는 등 의료공학을 선도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정형외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보조기구는 대부분 외국산이었다. 그런 만큼 비쌌다. 환자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맺혔다.

"나사 4개에 작대기 2개로 구성된 척추 보조장치 가격이 270만~300만 원에 달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300만 원짜리 제품을 만들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일하다 다쳐서 병원에 오면 300만 원짜리 기구를 써야 합니다. 환자들은 절박해 했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텐데…. 억울했다.

생체재료를 어떻게 생물학적으로 안전하도록 가공하느냐가 문제였다. 거기에 관심을 많이 갖고 귀국했다. 대학이나 연구소와 함께 인공관절 등을 국내서 개발하는 일에 매달렸다.

"첫 작품이 인공고관절이었습니다. 그건 더 비쌌죠. 400만~500만 원에 달했으니까요. 포항공대와 포철에서 만든 산업기술연구소가 개발하는데 연구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다음에 척추보조장치를 국내에서 개발했습니다. G7이라고,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국가로 만들기 위해 공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중에서도 의료공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국가 정책이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직전이었습니다. 창원대, 포항공대, 인제대, 영남대, 순천향의대, 가톨릭의대 교수 등이 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제가 주관책임자로 있었습니다. 목과 흉요추를 보조하는 척추고정장치를 개발했죠."

안 병원장은 은퇴할 때까지 자신이 만든 기구로 모든 수술을 했다. 그게 그의 자랑이다.

인조골 형성에 대한 주관책임자로 연구개발에 힘을 쏟기도 했다.

정형외과 의사이면서 한국생체재료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은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나라는 혼란스러웠지만, 결과론적으로 국내 의료공학계에는 기회가 됐다.

"외환위기가 터지니까 당장 그동안 사용했던 외국산 외료기기 수급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입상들이 국내 건강보험 수가와 맞지 않으니까 공급을 하지 않으려고 했죠. 의사들이 계속 사용하던 외국산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국산 기구를 안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때 의료공학 국내 산업이 발전하게 됐죠."

그렇게 안 병원장을 비롯한 초창기 선구자들이 일군 토양에서 우리나라 의료공학이 발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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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환 창원병원장. /김구연 기자

통합재활프로그램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안 병원장은 33년간 영남대학교병원에서 정형외과 교수로 근무했다. 또 한국생체재료학회 회장, 대한척추외과학회 회장, 영남대학교병원 척추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안 병원장이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11대 병원장으로 취임하며 창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7년 9월이다.

"창원병원은 근로복지공단 산하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역할이 큽니다. 의료진들이 공공의 건강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또 재활 프로그램이 잘 돼 있는 것이 자랑입니다. 시설투자도 많이 합니다. 일반 물리치료실뿐 아니라 환자들이 원래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재활 시스템이 있습니다. 심리치료까지 같이합니다. 그걸 국가에서 모니터링하죠."

창원병원은 지난 2017년부터 통합재활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또 올 3월부터는 요양 초기부터 직장 복귀 계획을 수립, 직장 복귀와 사후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재활하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한다.

산업재해로 다치면 초기손상 및 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산재 환자의 재활 교육 및 상담, 재활종합계획 평가, 1:1 집중재활치료, 작업능력평가 및 작업능력강화 프로그램, 장해진단, 정신건강 및 심리회복프로그램 등 산재근로자에게 요양 신청부터 치료, 재활을 통한 직업복귀지원까지 통합해 제공하는 제도이다.

"창원병원은 일반 물리치료실, 운동 물리치료실, 근골격계 물리치료실, 뇌신경계 물리치료실, 작업치료실 등 다양한 물리치료실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 직업복귀 평가 및 재활 기계가 있는데, 예를 들어 어깨가 힘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평가하는 것이죠. 산재 환자들이 치료를 다 받으면 작업 복귀에 대한 평가까지 해서 회사와 연결해줍니다.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통합재활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산업노동자들이 재해 초기치료부터 집중 재활, 장해 최소화, 성공적인 원직장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최상의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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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환 창원병원장. /김구연 기자

나쁜 자세와 요통

산업재해와 같은 사고가 아니어도 정형외과를 찾는 사람이 많다. 특히 요통은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증상이다.

"암과 같은 특별한 원인질환이 없는 요통이라면 대부분 저절로 낫습니다. 대부분은 퇴행성 변화가 관여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스스로 회복합니다. 그러나 요통은 대개 생활 중의 나쁜 자세나 습관에 의해 유발하기 때문에, 이를 고치지 않고는 계속 악화하고 회복되지 않는 겁니다."

안 창원병원 병원장은 "허리가 아픈 사람을 사흘 이상 눕혀 두지 마라"며 요통은 운동 등으로 움직이면 자연적으로 회복된다고 강조했다. 누워 있기만 해서는 도리어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요통이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큰 원칙이 2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적 경과, 두 번째는 모든 치료 방법의 효과와 부작용 판단입니다. 자연적 경과는 질병마다 고유의 운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기를 예로 들어볼게요.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은 진통제나 해열제, 기침을 멎게 하는 등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지 감기 자체를 낫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암이나 골수염은 그대로 두면 낫지 않으니까 수술 등으로 적극적 치료합니다. 대부분의 요통은 퇴행성 병변으로, 허리의 퇴행성 질병은 감기와 같이 대부분이 자연적으로 낫게 되어 있습니다."

척추 마디는 일명 디스크라고 하는 1개의 추간판을 중심으로 아래와 위 척추체, 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인대와 근육들로 구성된다.

이런 척추 마디가 여러 개 모여 하나의 기둥, 즉 척주를 이루는데, 팔과 다리가 어떤 물건을 잡고 위치를 이동할 수 있도록 자세를 유지하고, 몸통의 운동이 가능하게 한다.

요통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척추 마디에 기능적 이상, 질병, 혹은 손상이 발생해 생긴다.

요통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그래서 별다른 조치 없이 무심결에 넘기기도 한다.

"요통은 척추체의 뼈나 인대, 근육 등 다양한 구조물에 암이나 골수염 등의 질병이나 손상이 생겨 발생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통증은 추간판 탈출증(일명 디스크) 혹은 파열증후군, 후관절 증후군 등의 퇴행성 변화에 의해 생깁니다."

암이나 골수염 등은 대부분이 저절로 낫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나 항암제와 더불어 수술 등을 시행하게 된다. 반면 추간판 탈출증과 같은 퇴행성 병변은 대부분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연적으로 회복된다고 믿어 먹는 약, 주사 등의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

실제 추간판 탈출증 환자 75% 이상에서 심하게 튀어나온 추간판이 흡수돼 없어지면서 통증이 사라지고 마비된 신경도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안 병원장은 설명했다.

안 병원장은 "요통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요추부의 퇴행성 변화는 나이가 듦에 따라 생길 수도 있으나, 나쁜 자세나 습관에 의한 경우도 많다.

잘못된 식이 습관과 체중 증가에 의한 만성적 자극, 운동 부족에 의한 근력 약화, 반복적인 운동에 의한 추간판 손상, 배가 튀어나온 나쁜 자세에 의한 체중의 재분배, 흡연 등은 척추의 퇴행성 변화를 촉진한다.

"추간판 압력을 측정한 결과, 똑바로 서 있는 자세를 기준으로 하면, 누운 자세에서는 압력이 25% 감소하는 반면, 구부정한 자세에서는 약 25%가 증가하고, 의자에 앉은 자세에서는 약 50%가 증가하며, 완전히 구부린 자세에서는 약 400%로 증가합니다."

추간판 탈출증이나 추간판 파열증후군의 환자들이 세수를 하기 위해 앞으로 구부린 상태에서 통증이 악화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추간판탈출증 환자에서 허리를 뒤로 젖히는 운동을 권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허리를 뒤로 자주 젖히거나, 비트는 경우에는 후관절의 퇴행성 변화가 악화되어 후관절 증후군 혹은 척추관협착증을 초래할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퇴행성 질환이 낫는 것은 아니다. 3개월 이상 회복되지 않는 경우에는 자연적 회복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술 등의 적극적 치료가 요구된다.

"퇴행성 원인에 의한 요통은 주로 아침에 통증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암이나 결핵, 화농성 골수염 등은 밤에도 아픕니다. 자다가도 허리가 아파서 깰 정도면 병원에 빨리 와서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또 통증이 3주 이상 지속돼도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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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병원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치료와 재활

"몸은 한번 아프면 계속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재활을 위해서는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도움되는 것이 2가지인데,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건전한 생활습관입니다."

운동은 맨손체조나 걷기 등을 권했다.

안 병원장은 "치료는 환자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이고, 의사는 도움을 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리 통증이 있으면 스스로의 생활을 모니터링 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추천했다.

"허리가 아프면 '어제 내가 뭘 했지' 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통증 원인을 파악해 그것을 피해야 합니다. 스스로 잘 컨트롤 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치료하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것은 건전한 상식을 이용하고 주위 이야기에 휩쓸리기보다는 잘 모르면 전문가 즉 의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과거에 막연한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주사를 맞다가 나중에 수술도 못 하고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고, 요즘도 드물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막연하고 과학적 근거 없는 불건전한 상식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너무 믿지 마세요."

사람은 통증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움직이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도, 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

"통증이 심하면 좋은 습관을 복구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요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최근 부작용이 많이 감소된 좋은 약들이 개발되었음에도 약을 먹지 않고 지나치게 운동을 제한해 오히려 허리뿐만 아니라 건강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하는 경우도 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진통제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통증을 줄이고, 운동이나 물리치료 등을 이용해 재활함으로써 좋은 습관을 복구하면 만성적 통증을 예방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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