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 현직(顯職)에 앉히려 해도 사양해서 좀처럼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도록 요구받으면 지체하지 않고 물러나 출처진퇴가 실로 깨끗하다. 이에 반해 재주 많은 소인은 한번 얻은 지위는 끝까지 집착해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억지로 내놓도록 하면 반드시 한을 품어 원수가 된다."

송나라 정치가 사마광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사마광이 그냥 한 소리가 아니다. 역사를 두루 통찰한 뒤 내린 결론이다.

나아가고 물러섬이 깨끗하다는 말은 기골, 신념, 혹은 근성(Backbone)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흔히 한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층이라면 재능과 함께 이 정도 내면을 지녀야 한다고 다들 믿는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줄곧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2019년 초에 터진 승리 정준영 스캔들에 연루된 법조 경찰 엘리트들을 보면 그 비루함에 숨이 막힐 듯하다. 사법 적폐세력이 보여준 오만방자함은 또 어떤가? 여기다 "반민특위 때문에 국론이 분열됐다"는 어처구니없는 정치권 발언까지 더해져 한국 사회는 벌집을 쑤신 듯하다.

이 소용돌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무르익기 시작한 '엘리트 불신'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원래 엘리트란 한 사회를 이끄는 소수자들을 일컫는 프랑스어다. '선택된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이 말은 20세기 초에 대두된 엘리트 이론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즉 인류 사회는 항상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게 이 이론이다.

일견 강고한 듯 보이던 이 이론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엘리트들의 민낯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현재 용도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서민들의 무의식 속에 고착된 '엘리트 인식'에 급격한 균열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를 살펴보면 현대 엘리트 이론은 오히려 동양 역사에서 줄곧 다뤄지던 '소인론(小人論)'에 가까워진다.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민중에게 봉사한다는 고전적 상은 어디론지 간데없고, 그들만의 특권 유지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비루한 집단'이란 이미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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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요한 예로 꼽히는 프랑스 칼레의 시민 동상.

19세기 프랑스가 배출한 걸출한 역사가 이폴리트 텐은 1860년대의 영국을 관찰한 후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국의 지도계급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정신적 활력"이라며 경탄에 찬 필치의 글을 남기고 있다.

이 시기까지 일관되게 국가통치를 담당해온 영국의 귀족계급이 유지해온 활력과 자신감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견고했다. 곡물법 철폐나 선거법 개정운동에서 크게 기세를 올린 코브던파의 일부 급진적인 지도자들조차 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귀족계급을 타도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국가의 통치나 지도를 그들의 손에 맡겨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경영이라고 하는 일에는 특별한 종류의 인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도자로서의 특질을 갖추고 몇 세대에 걸쳐 그러한 훈련을 받음으로써, 드디어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이기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입장을 확립할 수 있게 된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중산계급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들은 인민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다는 격언)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사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은 미국인이 만든 용어다. 이 말이 영국에서 생기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영국의 귀족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압도적인 능력과 부정할 수 없는 강건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절정기인 1850년대에 역대 내각에서 몇 번이나 외무장관을 역임한 클래런던은 60세가 되어서도, 장관으로 재임 중인 5년 동안 계속해서 하루 16시간씩 집무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영국 장관은 거의 비서가 없었기 때문에 클래런던은 혼자서 매주 몇백 개나 되는 훈령을 기초하고 외무장관으로서 하루 6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온갖 사람들과 회견하고, 그 결과를 전부 스스로 메모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강을 염려하는 딸에게는 "외교라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스포츠"라고 농담삼아 말했다고 한다.

17세기에 활약한 영국의 외교관 윌리엄 템플은 지식인으로서의 긍지를 전원생활의 이상에 빗대어 다음과 같은 멋진 시를 남겼다.

제왕의 노여움도, 대중의 광기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경박한 세상의 시비에도, 외국의 위협에도

그리고 도시의 잡사에도, 변천하는 권력에도

움직일 필요가 없다.

왕관의 몰락과 망나니들의 벼락출세에도,

바다를 건너오는 우울한 보고에도

탄식할 것 없다. 나의 정원에서는

그는 그런가 하면 은퇴 후 쓴 에세이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모든 나라에는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려는 충동에 부나 노력, 정신이나 생명까지 쏟아부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것을 보통 국가에 대한 봉사나 공공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는 구실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공무는 엄청난 노력과 고심을 수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특별히 국왕의 부름을 받거나 자기 이외에는 적절한 사람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자신이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왕과 귀족이 등장하고, 이들을 찬미하는 보수적 글귀가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지만 이 사례가 17세기, 19세기 것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엘리트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19세기 일본은 외세의 충격에 맞서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을 지향함)'를 통해 근대국가가 되려고 몸부림쳤다. 메이지 유신을 시발로 무리한 팽창정책을 펼치다 끝내 자멸한 역사는 후세 사가(史家)들이 경계하는 바이지만, 적어도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일본 지도층이 보여준 헌신과 열정은 높게 평가할만한 것이었다.

평론가 이토 하지메가 이 시대를 되돌아보며 쓴 에세이는 일반적인 메이지 정서를 잘 담고 있다.

"메이지 시대의 문학가나 사상가는 예외 없이 사서오경과 유교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따라서 문장 어디를 뜯어보아도 쇼와시대의 풋내기 작가나 평론가들이 일삼는 연약하고 해이한 문장과는 달리 간단명료하고 날카로워 강철같은 느낌을 준다. 비근한 예로 메이지 시대 동양미술의 공로자였던 오카쿠라는 <동양의 이상>, <차의 책> 등을 영어로 썼으며, 문호 모리는 독일어의 달인이었다. 유교의 스토이시즘(Stoicism·견인불발의 의지에 입각한 극기주의)으로 함양된 메이지의 정신 능력은 한양일(漢洋日) 세 학문의 깊은 뜻을 터득하고 추호도 나태하지 않다."

메이지 전사(前史)를 장식했던 사카모토 료마를 보자. 료마가 앙숙이었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을 설득해 막부타도 동맹을 이끌어 낸 것은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마리우스 젠슨은 "삿초 동맹은 에도 막부 권력의 쇠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동맹의 실현에 기여한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는 이를 통해 막부 타도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타고난 활력과 화술을 바탕으로 우국지사들을 하나로 엮은 료마의 기상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특히 료마가 삿초동맹을 성사시키고 선중팔책(船中八策·국가근대화를 위한 여덟 가지 방책)을 작성하여 대정봉환(大政奉還·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한 일) 건의서의 기틀을 잡은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인 것으로 이는 당대에 중요한 모범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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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트’라는 말의 위험성을 지적한 독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사실 엘리트 이론이 '엘리트 지배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설을 공고히 하기 전 이미 많은 이들은 엘리트라는 말에 담긴 위험성을 포착하고 있었다. 독일 통일을 완성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1938년에 쓴 편지에서 "조국애(祖國愛)란 몇 안 되는 저명한 정치가들에게만 그들을 정치에 종사하게 한 동기"라며 "대다수 정치인들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명령하고 찬양받고 유명해지기 위한 소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과거문화사>를 쓴 진정(金諍)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대 문인들의 문집 속에는 민생과 국정을 걱정하는 우환의식이 충만해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신성인할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런 작품들도 대개 어느 정도는 고시적(考試的)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고시적 성격이란 말 그대로 시험응시용 성격이란 뜻으로, 우국충정을 내세웠지만 그 글 속에는 자신을 알고 등용해달라는 욕망이 담겨 있었음을 뜻한다.

마키아벨리는 그 유명한 <군주론>에서 교황 일렉산드르 6세를 관찰한 후 이렇게 묘사한다.

"알렉산드르 6세는 사람을 속이는 일에만 몰두했는데, 그는 매번 사람들이 쉽게 속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만큼 모든 일을 강력하게, 그리고 확고한 서약으로 약속하면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이 지닌 단순성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그의 기만은 항상 효과를 거두었다."

알렉산드르 6세라는 특정 인물을 겨냥한 말이지만, 마키아벨리가 들여다본 것이야말로 지도계급, 엘리트층에 내재된 '본원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527년 중국 초나라. 평왕(平王)의 아들이 진나라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평왕은 비무기(費無忌)란 이를 보내 그 여자를 맞이하도록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평왕의 첩이 되고 말았다.

비무기가 여자의 미색이 뛰어난 것을 보고, 왕에게 그녀를 직접 취하도록 꼬드긴 것이었다. 대가는 거창했다. 비무기는 평왕의 신임을 독차지했을 뿐 아니라 권력과 재물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비무기의 수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인 태자가 장래에 대권을 잡게 되면 자신이 곤경에 처할 것을 예상하고 그를 중상모략한다. 평왕은 태자와 그를 둘러싼 측근들을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다. 태자는 도주했지만 이 때문에 나라 안은 엉망이 되고 만다.

비무기라는 인물은 역사에서 소인(小人·도량이 좁고 간사하며 사리사욕을 탐하는 이)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많은 이들은 짐짓 그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하지만 비무기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좋은 물을 만나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성싶다.

문화사학자 위치우이는 '소인론'에서 그들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첫째 소인은 번거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태자비를 바꿔치기하는 일은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비무기는 이 일을 멋지게(?) 성사시켰다.

"둘째 소인은 피해를 입은 자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는다. 참회를 하는 법도 없다. 비무기는 태자비를 바꾸는 데 만족하지 않고 피해자인 태자를 집중 타격했다.

"셋째 소인은 동정을 얻으려 노력한다." 다른 이들의 재산, 명예, 생명을 빼앗으려 할 때도 낮은 목소리, 눈물이 고인 눈, 떨리는 입술, 머뭇거리는 어조로 자신을 변명한다. 비무기 또한 이런 태도로 평왕을 파고들었다. 이러니 어찌 사람들의 동정을 사지 않겠는가?

"넷째 소인은 반드시 유언비어로 분위기를 조장한다." 소인들은 천부적으로 능수능란한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위인이건 일반 백성이건 간에 거짓과 유언비어라는 미궁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비무기가 전개한 모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후 위치우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봉건 정치체제에서 일반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들은 비무기 같은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격 구조를 짓밟아 부수어 버리고는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전혀 심리적 장애를 느끼지 않았다. 인성 도덕 신망 약속 맹세 모두를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고 우정, 골육의 정, 수치스러운 감정, 측은지심을 하나씩 내던져 버렸다. 이들은 극히 자유롭지 못한 봉건 전체주의 사회가 길러낸 '자유인'인 셈이다."

봉건체제란 말을 없애고 시대를 지금으로 하더라도 이 문장은 말이 된다. 특히 비무기 같은 소인 대신 엘리트를 집어넣어도 문장이 조금도 어색해지지 않는다. 속임수의 달인 교황 알렉산드르 6세나, 반민특위를 국론분열의 주범으로 모는 정치인, 해방 후 처음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사법부 적폐세력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집요한 사익(私益) 추구와 정략'이다.

기골과 활력, 조국애로 무장한 엘리트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엘리트란 화려한 탈을 쓴 '소인'이라는 사실이 점점 뚜렷해지는 요즘이다.


참고자료

♣ 나카니시 테루마사 지음/서재봉 옮김, <대영제국 쇠망사>, 까치

♣ 위치우이 지음/유소영 심규호 옮김, <천년의 정원>, 미래 M&B

♣ 마리우스 B 잰슨 지음/손일·이동민 옮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푸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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