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농구 최초 전력분석원

창원LG세이커스 농구 경기가 열리는 창원체육관에는 가장 키가 큰 김종규(206cm)에 뒤지지 않는 프론트 직원이 있다. 대학 때는 현주엽(고려대) 현 LG 감독, 예능인 서장훈(연세대)과 함께 대학 농구 트로이카 시대를 구가했던 박도경(중앙대·43) 차장이다. 서 씨는 1974년생, 현 감독은 75년생인데 박 차장은 74년생이면서 75년생이다.

서장훈·현주엽과 끈질긴 인연

"초등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재능이 없다고 해 운동을 접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조정 배구 선수도 해보다가 중3 때 농구를 하기로 정했죠. 이후 진학하고 하는 과정에서 1년을 쉬었는데, 74년생이면서도 75년생으로 호적에 올라있으니 뭐 그러려니 했었습니다."

부산 중앙고에서 본격 농구 인생이 시작됐다. 74년생으로 함께 입학했던 이 중에서는 추승균 전주KCC 감독, 박훈근·박현규 전 프로선수가 입학 동기였고 오성식 전 LG 코치는 고교 선배였다. 중앙고가 농구 명문으로 이름을 떨칠 때였다.

서장훈 현주엽과는 고등학교 때도 많이 부딛혔지만 대학 때부터 끈질긴 인연을 이어왔다. 농구대잔치가 최고의 인기를 끌던 90년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센터로서 셋은 항상 상대를 수비하는 책임을 부여받았던 것. 서장훈 박도경은 센터로,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 각각 팀의 중심이었던 것.

이런 인연은 1998년 프로농구가 출범하고 1기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청주SK나이츠에 지명되면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이후 서장훈과는 길이 엇갈렸지만 현주엽과는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 12월 허남영 현 SK 코치와 트레이드되며 LG로 옮겼다. 하지만 선수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릎 수술만 4번을 받으면서 2001-200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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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경 창원LG세이커스 차장. /정성인 기자

한국 농구 최초 전력분석원

"시즌이 끝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은퇴 소식이 퍼지자 당시 코리아텐더라고 벤처기업이 운영하는 팀이 있었어요. 여기서 키 큰 센터가 필요하다며 저에게 같이하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 분위기가 벤처팀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았고, 현재 세이커스 단장인 한상욱 사무국장은 은퇴 후 함께 가자,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은퇴 후 구단에 남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매니저로 시작했다. 그런데 2002년은 한국에 '히딩크 열풍'이 몰아칠 때였다. 히딩크 감독은 고투비라는 전력분석원과 함께 왔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 감독에게 분석보고서를 제공하는 것이 스포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그때 한 단장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전력분석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한 것.

박 차장은 비디오 분석 방법도 배우고 장비도 들여오고 하면서 한국 프로농구 사상 첫 전력분석관이 됐다.

"당시는 전력분석원이라는 명칭도 없었어요. 다른 구단이나 언론에서 보니 머리를 빡빡 깎은 애가 전력분석원이라고 다니니 신기했나 봐요. EBS '프로열전'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대학에도 특강을 제법 다녔습니다. 체육계 쪽 직업을 생각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이런 직업도 있다는 걸 소개해준 거였지요."

체육과 교수들과 친분도 쌓이고 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당시 운동선수 대부분이 학창시절 공부와는 담쌓고 운동만 했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할 때 한국체육대학 교수가 함께 공부해보자는 제안을 해 한체대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마침 2007~2008년 무렵 야구 김성근 감독이 통계와 데이터 쪽에 관심을 쏟으며 붐이 일었다. 그리해서 초대 회장을 김 감독이 맡고 대학 교수 등이 참가해 스포츠애널리스트협회를 창설했다. 협회는 전력분석원 양성에 힘을 쏟았지만 현장에서 한계가 오면서 얼마 후 유야무야 됐다.

"선수 출신 분석원의 분석 자료는 감독 코치 선수 등 현장에서 어느 정도 먹히는데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분석 보고서를 제공해도 '너가 뭘 알아'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내부 생리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진 보고서가 채택될 가능성이 낮았던 겁니다."

박 차장이 생각하는 전력분석원은 일단 대학까지는 선수 생활 경험이 있어야 현장에 먹힌다고 얘기했다.

"전력분석 하려면 그 종목에 대한 이해력이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서 지금 트렌드, 농구 같으면 NBA 유럽농구 아시아농구 흘러가는 흐름을 알아야되고요. 그래야 감독이나 코치 선수 구단 팬까지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대학 2학년까지 선수 하다가 그만두고 전력분석원으로 변신한 이가 지금도 KBL 구단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스카우트에 홍보까지 1인 3역

LG 경기 중 한 번씩 벤치 맞은편에 있던 박 차장이 벤치에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이미 약속된 것이다.

지난해 현 감독이 지도자 경험 없이 덜컥 LG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5년 현 감독이 LG에 선수로 왔을 때 이미 전력분석을 하고 있던 박 차장과는 친구 사이기도 하지만 이미 전력 분석에 탄력이 붙고 있었을 때여서 신뢰가 있었다.

"현 감독이 초보 감독이다 보니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할 때가 있을 거라며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나를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때 싸인을 보내달라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4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확정할 정도로 현 감독 체제는 안착했다. 이번 시즌 후반기로 오면서 박 차장이 벤치 쪽으로 신호를 보내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훨씬 많은 일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연락을 했더니 느닷없이 미국이라고 했다. 휴가철도 아닌데 웬 미국? 싶었지만 그는 이미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던 것. 다음 시즌 준비도 할 겸, 당시 LG 외국인선수 기량이 들쭉날쭉하면서 불안할 때였다. 만일의 경우를 위한 대비였다.

그가 1년 농사를 좌우할 외국인 선수 2명을 선발하기 위해 검토하는 선수는 3000여 명에 이른다. 한국과 LG에 적합한 선수로 이 중 100명 정도를 추린 후 영상을 보고 2차로 걸러낸다. 그렇게 20~30명이 남으면 미국으로 건너간다. 직접 경기를 보기도 하고 에이전트와 접촉해 한국에 올 의향이 있는지도 타진한다. 이렇게 계속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며 선수를 영입한다.

이 일만 해도 벅찰 텐데 구단 홍보 업무도 도맡아 하고 있다. 1인 3역을 하는 그지만 평생 해온 농구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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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경 창원LG세이커스 차장. /정성인 기자

아, 그의 빡빡 깎은 민머리에 얽힌 일화도 얘기해줬다.

1998년은 SK텔레콤이 011과 012 번호로 휴대전화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사업을 할 때였다. 숫자 '0' 마케팅을 하면서 박 차장에게 선수도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머리를 밀어보라고 권했다.

당시 탈모 증상이 시작되던 때였는데 머리를 깎고 나니 의외로 불편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 좋아서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한단다.

"이틀에 한 번 정도 면도기로 미는데, 처음에는 면도칼에 베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30초면 끝납니다. 벌써 20년이 넘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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