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르고 / 서쪽하늘 문 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냄새가 나를 울리네 /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 가야 해 / 누가 이런 사람을 본 적 있나요 / 나이는 18세 이름은 순이

가수 나훈아가 부른 '18세 순이'란 노래 가사의 일부다. 내 사랑 순이는 왜 살구꽃이 필 때 돌아온다고 했을까? 내 사랑 순이가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살구꽃 피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살구꽃은 진달래꽃, 복숭아꽃과 더불어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진달래꽃이 피고 난 후 연이어 살구꽃이 핀다. 4월쯤 피어나는데 담홍색 꽃이 나무 가득 피어난다. 본격적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꽃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내 사랑 순이는 농사가 시작되는 4월쯤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떠났던 것이다. 달력이 없던 옛날에는 살구꽃이 피는 시기에 곡식 씨를 뿌렸다고 한다.

살구나무는 장미과 벚나무 속의 나무다. 큰 키 나무처럼 우뚝한 모습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열매가 많이 열려서인지 수백 년 세월 버티며 오래 사는 살구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원산지는 중국 북서부 또는 아르메니아다. 최초의 재배 흔적이 아르메니아에서 발견되면서 아르메니아가 자국이 원산지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영산에 복숭아, 오얏, 매화, 살구나무가 많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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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꽃. /윤병렬

기독교 성경에서는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겨울이 지나고 난 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살구꽃이라고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야 하는 대륙성 기후가 나타난다.

같은 북반구지만 기후가 다르면 꽃피는 시기가 다소 다를 수 있다.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곳에서 재배되는 살구는 일조량이 풍부해 복숭아나 자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살구는 단맛과 신맛이 섞여 있다. 몹시 배고픔을 감내해야했던 어린 시절 살구나무 열매는 매우 요긴한 간식거리 중 하나였다. 살구나무 열매가 익어갈 무렵은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배고픔을 달래주긴 하지만 잘못 따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어 어른들은 조심하라 일러주기도 했다.

살구나무가 우리나라로 건너온 시기는 정확하게 기록되어있진 않지만 대략 삼국시대 이전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고승 명랑이 읊은 시에 '산 속에 있는 복숭아나무와 개울가에 있는 살구나무에 꽃이 피어 울타리를 물들이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살구나무와 살구꽃에 대한 기록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옛 시골 마을 풍경을 떠올리면 으레 살구꽃이 핀 모습이 등장한다. 소박하게 둘러쳐진 흙담 뒤덮듯 피어난 연분홍 살구꽃이 장관을 이룬 모습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이 피는 순서로 보면 매실나무 꽃이 제일 먼저다. 매실나무 꽃은 설중매로 표현되듯 아직 찬 기운이 머무는 늦겨울과 초봄에 진한 향기와 함께 피어난다. 매실나무 꽃이 질 때쯤 피는 꽃은 진달래다. 참꽃으로 불리는 진달래는 3월 말 쯤 핀다. 지금은 진달래꽃이 지고 난 후 도시와 가로변이 온통 벚꽃으로 꽃 사태를 이루지만 옛날에는 살구나무 꽃이 으뜸 꽃이었을 것이다. 조선 숙종 때 문신 김진규는 거제도에 귀양을 갔던 모양이다. 거제도에서 살아야 했던 유배객에게 살구꽃은 고향을 떠올리는 하는 고향의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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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과 살구꽃. /윤병렬

매화는 반쯤 지고 살구꽃이 피어나니 / 바다 밖 봄빛은 나그네의 마음 설레게 하네 / 멀리 고향집 뜰 북쪽 담장에 선 그 나무 그립구나 / 아름다운 몇 그루 나무, 내가 손수 심은 것인데…

외로움에 지친 나그네에게 살구꽃은 고향의 따스함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움의 꽃이 되었다.

살구꽃은 매실나무 꽃과 매우 비슷하다. 얼핏 봐서는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구분하는 방법은 꽃받침을 보면 된다. 살구꽃은 꽃잎 아래 붙어 있는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는데 비해 매화는 젖혀지지 않는다. 매화는 하얗게 피는 백매, 붉게 피는 홍매가 대표적인데, 살구꽃은 대부분 연분홍으로 피는 것이 특징이다. 살구나무는 매실나무보다 키가 큰 편이고, 잎도 매실나무에 비해 넓은 편이다.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르다.

살구는 살구나무의 열매를 부르는 말이다. 6월에서 7월 사이에 노란색으로 익는데 잘 익은 살구는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살구의 어원을 '살구가 개를 죽인다'에서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훈몽자회에는 살구를 '살(솔)고'로 표기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살구'라는 단어로 표기되기 시작한다. 한자말로 표기되면서 죽일 살, 개 구 자가 등장하게 된 것인데. '살고'의 잘못된 표기로 추정한다. 원래 말 살구는 '살고'에서 나온 순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살구꽃은 급제화라 부르기도 했다. 살구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과거 시험이 실시되었던 모양이다. 중국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에게 살구꽃 명소에서 축하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그 장소의 이름이 행원이다. 행원은 살구나무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살구꽃이 만발한 행원에서 시도 읊고 술잔도 기울였던 모양이다.

공자는 살구나무가 많은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야외수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살구나무가 있는 행단은 공부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이야기 속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공자는 숲 속을 거닐다가 조금 높은 언덕에서 쉬게 되었다.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글을 읽게 하고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그 후 송나라 건흥 연간에 공도보가 공자의 묘 앞에 단을 만들고 그 주위에 살구나무를 심어 행단이란 이름을 붙였다. 금나라 때 학사 당회영이 행단이란 두 글자의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이 행단 주변에 심었다는 나무가 살구나무냐 은행나무냐 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행(杏)자는 살구나무를 뜻하기도 하고 은행나무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자를 모시고 공부했던 서울의 명륜당이나 지방의 향교, 서원에 유독 은행나무를 많이 심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연분홍 살구꽃이 만발한 곳은 공부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래서인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론하던 자리가 살구나무 아래였는지 은행나무 아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은행나무를 심었는지도 모른다.

살구꽃은 술집과 깊은 인연이 있는 꽃이기도 하다. 살구꽃이 피어있는 마을을 행화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술집이 있는 마을, 술을 파는 여인네가 있는 마을을 의미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행화촌이 술집을 의미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두목의 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명의 시절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 / 길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쓰리게 하네 / 묻노니 술집이 어느 곳에 있느뇨 / 목동은 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

중국 송나라 때 유극장이 편찬한 책을 바탕으로 한 <천가시>에 실려 있는 시다. 우리 시조에도 행화촌을 술집으로 표현한 경우가 제법 많다고 한다.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두목의 시를 바탕으로 읊은 시조들이다.

살구나무 행(杏)자가 들어가는 단어 중 하나에는 행림도 있다.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신선 같은 의사였던 동봉이 환자를 치료해서 병이 치유되어도 약값을 받지 않고 중증인 자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경증인 자는 한 그루를 심어달라고 했다 한다. 이렇게 해서 심은 살구나무는 수년이 지난 후에는 십 수만 그루로 늘어나 울창한 숲이 되어 살구가 열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숲을 동선행림이라고 했다 한다. 그리고 살구를 같은 양의 곡식과 자유로이 교환하여 그 곡식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신선전>에 전해지고 있다.

살구는 씨를 발라 버리고 말린 것을 건행이라 하는데 행탕을 만들어 예부터 자양강장의 보약으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개고기 먹고 체한 데, 토사, 설사, 선홍열, 기침 등에 처방하는 약제로 널리 쓰여 졌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살구나무에 신비한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험한 산길 갈 때 살구나무 지팡이나 살구나무로 된 목탁을 들고 가면 범이나 늑대 같은 맹수가 덤벼들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 살구꽃을 소재로 한 자장가도 있다.

아가 아가 울지 마라 / 울타리 옆 살구꽃 붉게 피었으니 / 살구꽃 떨어져 열매 맺으면 / 너랑 나랑 둘이서 나누어 먹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살구나무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살구나무가 일품이다. 수령이 350년이나 되었다. 원래는 기장군 장안읍 효암 마을 바다 근처 모래땅에서 한 쌍으로 자라던 것을 2006년 고리 원자력 발전소 확장 공사로 인해 마을이 없어지면서 한 그루는 고사하고 나머지 안 그루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말이산 고분군 들머리에도 살구나무 한 그루가 예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살구꽃이 필 무렵이면 근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살구꽃 아래 모여들어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 모습이 활짝 핀 살구꽃만큼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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