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 연구' 논문서 주장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이교재 선생은 '옥살이 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기보다 와병 중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장근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유 교수는 지난 27일 저녁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열린 인문마산연구모임 3월 세미나에서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 연구'를 소개했다.

유 교수는 2017년부터 선생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해 초고를 완성했다. 선생의 독립운동 등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논문이다. 유 교수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이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간 선생의 독립운동이 단편적으로 알려졌으며, 이마저 오류가 발견되기도 해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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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가 27일 오후 6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열린 인문마산연구모임 3월 세미나에서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 연구' 논문 초고를 소개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유 교수가 발표한 눈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선생의 옥살이와 죽음에 관련한 내용이다. 유 교수는 일부에서 선생이 옥사했다거나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중 가출옥해서 출옥한 지 10여 일 만에 숨을 거뒀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유 교수는 1923년 통영 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중국 상하이로 돌아가던 중 신의주에서 체포돼 서대문교도소에 입감됐다거나 1931년 11월 20일 국내로 잠입한 후에도 체포돼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다는 후대 기술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경상남북도 상주대표 임명장이 발행된 때가 1931년 11월 20이고, 그가 세상을 떠난 게 1933년 3월 10일이므로 만약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됐다면 1년 정도 기간이었을 것이다"며 "하지만 그가 죽고 나서 나온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 사망했다고 하므로 이를 따르면 수감 기간과 병석에 있던 기간이 중첩돼 하나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부산교도소 수감과 관련된 이야기는 결정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믿기 어렵고, 진전면에 소장된 <범죄인명부>에도 이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기에 지금으로서는 와병 중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현재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교재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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