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밥벌이' 주춧돌 놓고…
20대부터 상임연출가 활동
항상 책 읽으며 공부 매진
극단 월급제·분업화 고안

지난 23일 끝난 제37회 경남연극제. 이번 연극제에서 진주 극단 현장은 <여가수 진수린>(백하룡 작, 고능석 연출)이란 작품으로 단체 금상, 연출상, 연기 대상을 받았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상을 받긴 하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많이 받을 줄을 몰랐네요. 생각해보니 '극단 현장이니까' 이 정도 공연은 당연한 거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뭐, 경남연극제에서 이렇게 상을 여러 개 받는 게 극단 현장에는 낯설지 않습니다. 명실 공히 경남 대표 극단이라고 할 만하죠.

다른 극단과 비교해 현장은 여러모로 선진적인 구석이 많습니다. 극단 형태부터가 사단법인입니다. 정확하게는 전문예술법인이죠. 쉽게 말해 일종의 '회사'란 말입니다. 무려 1994년에 법인 등록을 했죠. 당시 전국 연극 극단 중 최초였다고 합니다. 또 현장은 단원들에게 월급을 줍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배우를 하는 게 아니라, 배우 그 자체가 유일한 직업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일이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연출은 연출만 하고, 배우는 연기만 하도록 합니다. 기본적으로 무대 미술, 조명 등을 담당하는 이가 각각 따로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획, 회계 담당자도 별도로 두고 있죠.

극단 현장 정도 되니까 이 정도 시스템을 갖춘 것 아니냐 싶겠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현장도 어려운 시절이 다 있었지요. 그런 시절에 누군가가 멀리 내다보고 이런 시스템을 차곡차곡 만들어 온 덕분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지난 1월 작고한 조구환 연출(향년 63세)입니다. 최근까지는 예술감독이란 직함이었지만, 이분은 극단 현장의 '영원한 상임 연출가'라고 해야 옳습니다.

극단 현장이 창단된 게 1974년, 조구환 연출은 1976년에 극단에 들어와 1984년 <사람의 아들>(이문열 작)이란 작품부터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의 나이 28세. 지금 보더라도 한 극단의 상임 연출가로서는 굉장히 젊은 편이죠.

진주 지역 연극 인재들이 진주 시내에 있던 대학, 예를 들어 경상대 극예술연구회 같은 동아리를 통해서 길러지던 때였죠. 조구환 연출은 경상대뿐 아니라 진주 지역 대부분 대학을 찾아다니며 후배들을 지도하고, 작품 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출가로서 그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공붓벌레였습니다. 당시로선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한 것도 이런 공부 덕분이었지요. 그리고 그는 배우 육성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친 듯합니다. 현재 창원 창덕중 교감으로 있는 서용수 연극인생학교 숲 학장에게서 경상대 극예술연구회 시절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서 학장은 극단 현장 출신으로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친 대안교육 전문가시죠.

"제가 경상대 극예술연구회에 있던 때예요. 그때가 3학년이었는데, 구환이 형이 저한테 '니는 연출 하지 마' 그러더라고요. 당시는 기분이 안 좋았죠. 졸업 전에 연출로 작품을 한 편은 하고 학교를 떠나는 게 보통이었거든요. 이유를 물었더니 저를 배우로서 아끼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다들 연기를 좀 할만하면 연출로 가버리더란 말이었죠. 그래서 형 때문에 저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기만 했어요."

▲ 극단 현장 사무실에서 겨우 찾은 조구환 연출의 젊은 시절 사진. 형형한 눈빛에 연극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듯하다. /극단 현장

그래서일까요. 서용수 학장은 대학 졸업 후 극단 현장에 들어간 첫해 작품에서 전국연극제 경남대회 연기상을 받았죠.

조구환 연출은 배우 육성과 함께 연극인이 연극으로만 밥벌이를 할 방법이 뭘까 항상 고민했습니다. 현재 극단 현장 시스템의 태동이라고 할 만한데요.

극단 현장이 실질적으로 지금 모습을 갖춘 건 지난 2004년 정대균 현 MBC경남 사장이 극단 대표를 맡으면서부터죠.

그가 대표를 맡으면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역에서 연극을 해서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거고요, 두 번째는 제대로 된 소극장을 하나 만들자는 거고, 세 번째는 연극인들의 노후 대책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이 중 첫 번째는 월급제와 분업화를 안착시키며, 두 번째는 현장아트홀을 만들며 거의 실현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애초 조구환 연출의 고민과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대균 대표와 조구환 상임 연출의 조합이 완성되면서 극단 현장은 날개를 달고 펄펄 날아오릅니다. 이제는 경남은 물론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극단이 됐죠.

하지만, 조구환 연출을 무너뜨린 건 술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경제적으로 기울어진 집안 사정 등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유로 힘들어진 그는 술로 괴로움을 이기려 했던 것 같습니다. 서용수 학장, 정대균 사장, 경남연극협회 이훈호 회장 등 그를 20대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 똑같이 한 말이 있습니다.

"구환이 형은 굉장히 여린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엄격한 연출가로서 '연기'를 계속하면서 온갖 스트레스나 분노를 속으로만 삭여왔던 거죠. 그래서 더욱 술에 집착했던 것일까요. 그 술에 자신이 잡아먹혀서 결국 후배들이 같이 작품을 하기 꺼릴 지경까지 되어버렸던 거죠.

"작품 하나만 하자."

조구환 연출이 작고하기 전까지 가까운 지인에게 자주 하던 말입니다. 평생 연극에 미쳐 살았던 분입니다. 몸이 기울어진 최근 몇 년, 어쩌면 그에게 연극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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