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의 내 삶 성찰하게 해준 작품
교권보호, 관료주의·행정잡무 줄여야

지난 8일부터 23일까지 사천에서 제37회 경상남도연극제가 열렸다. 경남지역 14개 극단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23일 저녁 시상식에서 거제의 '극단 예도'가 <꽃을 피게 하는 것은>으로 대상을 받았다. 극단 예도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경남 대표' 자격으로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4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 18일 저녁 사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다.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하는 감동의 무대였다. 연극을 보는 내내 교사로서의 내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동료 선생님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함께 관람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선생님이 이 연극을 꼭 함께 관람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선생님들의 고뇌들이 상처가 아닌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연출 의도를 생각하면서.

대본은 창원 양곡중학교 국어교사 이선경 작가가 썼다. 이번 경남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훌륭한 작품이다. 그날 연극이 끝난 뒤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대본 전체를 메일로 받아 다시 읽어보았다.

"(민정)교감 선생님. 학교 시설 관리는 행정실 소관 아닙니까. (교감)강 선생 업무가 뭐죠? (민정)학생 안전관리, 안전교육, 성교육, 보건업무요. (교감)보건업무니까 학생들 건강관리, 미세먼지 대책 세우고 공기 청정기 설치, 관리 해야죠. (교무부장)쯧쯧쯧 (재훈에게) 결국 또 행정실장한테 밀렸구만. 무슨 교사 업무가 이리 많냐. (민정)미세먼지, 공기 청정기를 제가 관리하라는 말씀이시죠? (교감)그렇죠. 먹는 물도 학생 안전과 관련된 업무니까 정수기 관리, 정화조 관리, 수질 검사, 그리고 학생 안전과 관련된 CCTV 설치 및 보수도 강 선생 일입니다. (민정)그럼 저는 언제 수업하고 언제 학생 상담합니까? 교재 연구는 집에 가서 합니까?"

매년 학교 현장에서 업무분장을 놓고 벌어지는 교무실의 한 장면이다. 이 연극은 현장 교사들의 고충과 고뇌를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고 있다. 강민정은 어느 사립 고등학교 수학과 기간제 교사다. 교육경력 8년 차로 능력은 뛰어나지만, 문제교사로 낙인찍힌 민정은 학교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이번 학교에서만은 오래, 조용히 잘 지내기로 스스로 결심한다. 하지만 결국 '뜨거운' 성격을 잠재우지 못하고 학교 현장의 불합리한 모습에 문제제기를 하고 만다. 그런데 상담을 놓친 한 학생이 자살하고 민정은 해고된다.

학교는 과연 교육을 하는 곳인가? 교육의 본래 목적은 무엇인가? 교사는 과연 전문직인가? 철옹성 같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의 덫에 갇힌 학교 사회. 이런 상황에서 '좋은 교사'란 있을 수 없다. 책상머리에서 문서 몇 장으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감사대비에 철저한 일상의 업무들. 학생 수는 줄어도 교육행정 직원은 늘고 교육청 규모는 커졌다. 그런데도 업무진행은 느리고 교사들의 행정잡무는 줄어들지 않는다. 말로만 '지원'이지 실제는 '관리와 통제'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 교육행정. 교권보호의 첫걸음은 교사에게 전가하는 행정잡무부터 줄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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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고등학교 국어교사 이복규 시인은 "꽃을 피게 하는 것은/ 햇빛도 물도 아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 틈으로 뛰어드는 용기 때문이다"고 노래한다. 그렇다. 죽음을 무릅쓰고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바로 이런 용기가 꽃을 피우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부디 올봄엔 우리 선생님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게 하는 용기가 샘솟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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