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칼질하는 날 옛날 생각 새록새록

'맛수다'는 '맛있는 수다'의 줄임말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문화부 기자들이 모여 맛에 관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첫 번째 주제는 경양식 돈가스입니다. 경양식(輕洋食)은 가벼운 서양요리라는 뜻으로, 경양식집은 1960~1990년대 초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과 전통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 들어서면서 경양식 돈가스 인기는 시들해졌죠. 몇 해 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복고열풍이 불었고 경양식 돈가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부근 경양식 돈가스집을 찾았습니다.

▲ 우리나라 경양식 돈가스는 일본 돈가스와 달리 포크와 칼로 고기를 썰어야 한다. /김민지 기자

돈가스 2개와 비빔돈가스 1개를 주문했다. 얼마 후 식전빵과 양송이 수프, 김치, 채 친 양배추에 마요네즈와 케첩을 반반 섞은 샐러드가 나왔다. 애피타이저였다. 휴지를 밑에 깔고 포크·나이프·숟가락을 세팅했다. 후추 뿌린 양송이 수프를 먹으면서 생애 첫 돈가스와의 만남을 꺼내놓았다.

김민지: 외삼촌댁에 놀러 가면 외식을 했고 경양식집을 가곤 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고 의자나 탁자가 고풍스러웠죠. 당시 칼질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엄마가 대신 해줬어요.(웃음) 돈가스를 먹을지 비프가스를 먹을지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을지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이미지: 1990년대는 분식집에서 돈가스를 팔았잖아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동 돈가스로도 나와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줬어요.

▲ 애피타이저. 식전빵·소스, 양송이 수프, 김치. /김민지 기자

이서후: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았나봐요. 돈가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네요. 대학교 때 고기가 '얇고 큰' 돈가스를 먹었어요. 사실, 고기가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를 좋아해요.

이미지: 맞아요. 얇은 고기에 소스가 뿌려져 나오는 돈가스를 먹다가 고기가 두꺼운 일본식 돈가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미리 썰어져 나와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먹었죠.

연령대마다 돈가스에 대한 기억이 달랐다. 메인인 돈가스가 나왔다. 소스가 고기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돈가스 옆에는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낸 둥근 모양의 밥과 오렌지, 감자튀김, 오이절임, 마카로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썰면서 돈가스에 따라나오는 음식을 이야기했다.

이미지: 식당마다 차이가 있죠. 마요네즈 소스에 과일이나 채소를 넣고 버무린 옛날식 '사라다', 또는 단무지나 김치를 주는 곳도 있고.

김민지: 파인애플이나 프루츠 칵테일 통조림 과일을 얹기도 해요.

이서후: 일본식 돈가스에는 된장국이 기본인데 우리나라 돈가스에는 시래깃국이나 콩나물김칫국 등을 주죠. 풋고추에 된장도 나오고.(웃음) 돈가스는 외국에서 유래했지만 곁들이는 음식을 보면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이에요.

▲ 기본 돈가스에 매운 맛을 더한 비빔돈가스. /김민지 기자

소스에 푹 적셔진, 돈가스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촉촉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살짝 느끼하다 싶을 때 밥 한 숟가락에 김치 하나를 얹어 먹으면 느끼함이 싹 씻겨 내려간다. 예전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먹을 땐, 뭔가 격식을 차려야 하는 분위기였다. '나 오늘 칼질한다'는 특별함 말이다. 2000년대 들어 분식집에서도, 편의점에서도 돈가스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종업원이 오더니 "후식으로 녹차, 커피, 사이다 중 뭘 드시겠어요"라고 했다.

이서후: 사이다요.

김민지: 커피요.

이미지: 녹차요.

후식을 먹으면서 경양식 돈가스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누리면서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열풍이 불었잖아요. 그러면서 경양식 돈가스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죠. 오랜만에 먹으니 옛 생각도 나고 맛있네요.

이서후: 가게 안 사람들 중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추억 때문에 많이 찾는 거 같아요.

김민지: 돈가스는 보통 단품으로 많이 먹는데 경양식 돈가스는 애피타이저, 메인, 후식 이렇게 코스가 있으니 좋아요. 어렸을 때 칼질하던 생각도 나고,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던 돈가스도 생각이 나네요.


돈가스 유래

돈가스는 돼지를 의미하는 한자인 '돈(豚)'과 커틀릿(cutlet·얇게 저민 고기에 빵가루 등을 묻혀 튀긴 요리)의 일본식 발음인 '까스'가 합성된 것이다. 우리나라 돈가스는 일본에서 건너와 변형됐다. 일본 돈가스는 육식을 금지했던 일본정부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탄생했다. 메이지유신 때다. 돈가스 조상은 독일·오스트리아의 슈니첼, 영국·미국의 커틀릿이다. 일본식 돈가스는 두툼한 돼지고기에 굵은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긴다. 한국식 돈가스는 고기를 두드려 얇게 편 게 특징이다. 또한 돈가스가 미리 잘려 나오지 않고, 소스가 뿌려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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