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핵심정체성이 된 항공·우주산업
그 뿌리 담긴 근대문화유산 보전해야

사천은 항공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가 자력으로 비행기를 처음 만들고 날아오른 도시가 사천이다. 1953년 10월 11일 사천비행장에서 조그만 비행기 한 대가 솟아오르더니 2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다녔다. 사천공군기지의 공군기술학교에서 설계·제작한 2인승 경비행기였다. 이듬해 4월 3일 '부활호'라 이름이 붙여져 1960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사천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도 있다. IMF위기를 맞아 삼성·현대·대우의 항공우주사업분야를 통합해 1999년 설립됐다. 우리나라에서 완제품 항공기 제작 능력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다. 사천에 공항이 있다는 사실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경남에 하나뿐인 공항이기도 하다. 중선포천과 사천강이 사천만으로 흘러들면서 만들어진 넓은 갯벌을 개활지로 활용하여 활주로를 내었다. 완제품 항공기를 시험·평가할 수 있는 이 활주로 덕분에 사천에 항공산업이 대거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최초 비행기 제작·이륙, 우리나라 유일한 완성 항공기 제작 기업, 경남에 하나뿐인 공항이 사천에 겹쳐 있다 보니 사천 사람들은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대부분 사천 하면 비행기 또는 항공산업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사천이 갖고 있는 핵심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사천 항공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일제 식민 지배와 관련되어 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1939년부터 여기 공군부대를 두고 조선사람을 강제동원해 군용비행장을 만들었다. 남해안의 정중앙인 사천과 남해 바다 한가운데 제주에 공군기지를 설치하면 남태평양과 중국대륙 모두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 군용비행장은 일제 패망 이후 미군 관할에 들어가더니 6·25전쟁 때는 공군 작전이 펼쳐지는 주요 기지로 활용되었다. 전쟁 뒤로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공군 기지와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민간 공항으로 함께 쓰이고 있다.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산물이라 해도 일부러 없애고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 전 사천에서 일제강점기 비행기격납고가 발견되었다는 경남도민일보 보도가 있었다. 원래 스무 채 넘게 있었으나 다 없어지고 두 채만 남았다. 남은 두 채는 별로 상하지 않았고 원형에 가까웠다. 사천 항공의 뿌리를 알려주는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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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는 몰라서 그랬다 치더라도 이제부터는 사천시청이 문화재 지정·등록과 관리·보전에 적극 나서고 더불어 시민과 학생들 교육자료로도 활용되도록 해주면 좋겠다. 사천을 항공의 도시로 여기는 사천 사람들조차 일제 군용비행장과 비행기격납고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가 모르기 때문이다. 사천에 남겨진 비행기격납고는 부끄러운 일제 식민지배 역사의 마지막인 동시에 이후 진행되어온 사천 항공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부끄러운 과거는 잊지 않아야 되풀이되지 않고 새로운 역사는 제대로 기억해야 잘 계승할 수 있다.

출판국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도서 제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장합니다. 학교와 현장을 찾아 진행하는 문화사업(공연··이벤트 제외)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경전문기자로서 생태·역사 부문 취재도 합니다. 전화는 010-2926-3543입니다. 고맙습니데이~~~
[출판국에서]아무도 안 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비춰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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