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넓기만 한 정보에 판단능력 흐려져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미디어 그립다

"사딸라, 사딸라." 햄버거 가게 계산대에서 중년남성이 말한다. 점원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상관없이 계속 '사딸라'를 고집해 결국 사간다. "저기 머꼬?" TV 앞에 앉은 남자는 화를 낸다. 뜻을 몰라 화를 내는 남자는 소리친다. 스트레스 풀기 위해 본 TV가 사람에게 스트레스 더 준다고. 공전의 인기드라마였던 <야인시대> 속 김두한 역할의 배우가 협상에 성공하는 장면을 따온 광고다. 웃음도 제대로 알아야 나온다.

하노이 북미회담이 까마득한 옛일 같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회담 전부터 미디어들은 생중계와 자체분석(?)을 끝도 없이 했다. TV와 라디오, 신문, 크리에이터를 포함 소셜미디어들조차도 하노이 북미회담으로 집중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신물 나게 보고 들었다. 그때 지구와 우리 사회에 다른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회담이 결렬됐다. 생중계만이 미디어의 사명이었을까. 결렬된 것은 맞는지, 왜 결렬됐는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한국이 취해야 할 자세는 뭔지, 제대로 분석해내는 미디어는 많지 않았다.

'장자연리스트' 사건은 고인의 10주기인데,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후배 등장으로 시끌벅적하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도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장자연리스트' 사건은 성매매와 강요, 강제추행 등 대부분 혐의에 공소시효가 지났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도 불법촬영과 성매매, 뇌물수수 혐의가 공소시효가 지나 특수강간 혐의만 남았다고 한다.

부아가 치민다. 대체 '공소시효'가 뭐길래, 국민 대부분이 분노하는 일이 그냥 덮일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대체 법은 누구를 위해 있는 건지, 그런 답답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언론들은 왜 없냐고 패악이라도 치고 싶다.

'승리와 버닝썬' 사건은 지옥문이 열린 형국이다. 관련 인물들과 관련 기업들, 이제 다 외울 정도다. 만만한 게 뭐라고 연예인 두드리기는 잘 보이는데, 실체를 알려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자꾸 큰 꾸러미들이 딸려 나온다. 더 큰 무엇이 있는지, 미디어들이 잔가지만 자꾸 건드려 주는 모양새다. 단순히 망나니 연예인들과 관련 기업의 일이기만 한 건가.

사람들은 정보가 부족했던 이전보다 더 판단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지금은 숨막히게 다양한 정보들이 얇고 넓게만 퍼져있어 판단능력을 흐린다. 깊이 있게 알 기회가 줄었다. 판단 좀 한다는 사람도 양분된 판단만 쏟아낸다. 뉴스 하나 뜨면 가짜 뉴스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없는 것을 가져와 뉴스인 것처럼 꾸미기도 한다는데,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을지 배우고 싶다.

'지평의 융합'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철학자 최진석은 '시선의 수준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삶의 수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더욱 수준 높은 시선을 갖고 싶다. 그 시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통해 지평을 넓히는 판단능력을 원한다. 과거나 미래의 누군가를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신들이 직접 그들에게 묻고 대답하며 판단 내리고 싶어 한다. 얇아지고 넓어지는 건 이제 그만, 더 깊고 단단해지고 싶다.

그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미디어들이 더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지평을 보여주길 바란다.

김혜란2.jpg

한 가지 사안으로 한 달 내내 분석해야 했던 글들이 그립다. 어렵지만 감사하며 읽던 글. 꾹꾹 눌러쓴 듯 선명하고 고뇌가 느껴지던 저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있는데 못 찾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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