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가요박물관 '친일 인물'논란
사실 입각 전시·후손 사과 기회를

경남도민일보(2019년 3월 21일 자) 1면에 실린 '밀양시장-시의원 가요박물관 공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며 밀양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입장을 피력하고자 한다. 먼저 밀양시 젊은 의원들께서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독립운동의 성지 밀양'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키려는 노력에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유교 문화에는 '염치(廉恥)'라 하여 도에 어긋나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청렴하고 곧게 살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이로 인해 부끄러운 일들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는 경향이 많다.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은 널리 선양하면서 그들의 친일 행위는 모두 다 침묵하며 그대로 덮어두었다. '당사자는 이미 사망했는데 이를 들춰내 국론 분열만 부추기는 것이 과연 국익에 이로운가?' 등을 내세우며 논란으로 삼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를 하려면 가해자의 반성이 전제돼야 하고, 피해자의 용서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일왕인 아키히토(明仁)를 향해 사죄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전범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두었을 뿐 정작 우리에게는 가해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마찬가지 논리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에게도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 최근 뉴스타파에서 친일파 후손 1177명을 추적해 민족에게 사죄할 의사가 있는지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들 중 단 3명만이 사죄할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사죄를 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음악가 100여 명이 수록됐으나, 정부 보고서에는 10명만 기재돼 있고 그중에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조명암 두 사람뿐이다. 이 중 한 사람인 박시춘을 선양하는 사업을 목적으로 밀양시에서 '(가칭)한국가요박물관'을 건립한다면 이는 민족 앞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밀양을 대표하는 대중음악가는 '허공' 작곡가로 알려진 정풍송, '머나먼 고향' 작곡가인 박정웅, '무정항구'를 작곡했던 남백송, 작사가 유금춘, 월견초 그리고 최초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은방울 자매' 김향미 등이다. 이들과 함께 박시춘도 가감없이 사실에 근거해 그의 친일 작품 13곡, 산업전사격려위문예능대 대원으로서 활동한 사실을 전시해 그 판단의 몫은 독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밀양시와 시의회에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비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박시춘 후손으로 하여금 민족 앞에 사죄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이 사업을 추진했으면 한다. 사죄를 하고 싶어도 기회를 얻지 못해서 그동안 미뤄두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서서 부모 또는 조부모 잘못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박물관이든 역사관이든 개관식에 그들을 초빙해 사죄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행정당국과 밀양시민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밀양은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또 하나의 역사적 기적을 만들어낸다면 밀양은 '친일행위를 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한 첫 번째 지자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시와 의회가 앞장서주길 간절히 바라며, 더 이상 숨기기보다는 드러내 잘잘못을 가리고 '진정한 화해'의 역사를 만들어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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