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처럼 고립됐다 끝내 흩어져버린
소멸 위기 토착어 쓰는 단 두 남자 이야기
사라지는 것들의 고독·사랑의 윤리 '반추'

쉽게 읽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서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라는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는, 당신은 어떤 '언어'로 세상에 말을 걸고 있나요? 나만의 언어로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요?"라고 묻고 싶다.

영화는 가상의 언어 '시크릴어'를 연구하려는 젊은 언어학자 마르틴(배우 페르난도 알바레스 레베일)이 멕시코 산이시드로 마을을 찾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을에 시크릴어를 쓰는 사람은 단 세 명. 하지만 그 가운데 하신타 할머니가 숨을 거두고, 마을에는 에바리스토(배우 엘리히로 멜렌데스)와 마을에서 쫓겨나 은둔자로 지낸 이사우로(배우 호세 마누엘 폰셀리스) 둘뿐이다.

시크릴어는 어떤 말일까.

비밀스러운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시크릿(secret)'이 연상되는데, 감독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언어다.

"태초에 새였던 여성과 땅을 걷는 최초의 남자가 사랑을 했지만 쓰는 언어가 달라 안타까웠지. 새는 남자에게 밀림 속 만물의 공통어인 시크릴어를 가르쳐줬고 둘의 결합으로 인간이 태어났어"라고 설명되는 시크릴어.

시크릴어를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가 처한 상황을 깊은 숲 속의 울림으로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는 유독 새소리와 바람 소리, 빗소리에 집중한다.

태초의 소리로 들린다. 특히 영화 초반 숲에서 시크릴어가 울려 퍼지자 온 새들이 반응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다.

영화는 마르틴이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전개한다.

▲ 시크릴어 원어민인 에바리스토는 50년 전 단짝 이사우로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승자는 스페인어도 구사하는 에바리스토였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컷

단짝이었지만 50년 넘게 대화하지 않은 둘.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고 승자는 스페인어를 쓸 수 있었던 에바리스토. 그리고 배신자로 낙인찍힌 이사우로는 외딴곳에서 한평생을 살고 있다. 시크릴어만 아는 이사우로의 고립과 고독함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서 이사우로는 자주 찾아오는 마르틴이 반갑다. 마르틴을 "우피베"라며 친구라고 부른다.

반면 에바리스토는 마르틴을 적대적으로 대한다. 이사우로와 만나고 싶지 않다.

마르틴은 에바리스토의 손녀 루비아(배우 파티마 몰리나)의 도움으로 에바리스토에게 다가가고, 이제는 노년이 된 에바리스토와 이사우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 비밀은 둘의 눈빛과 행동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50년간 대화하지 않았고 결국 말을 해야 서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에바리스토는 시크릴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마르틴은 더 적극적으로 에바리스토를 설득하고, 둘은 겨우 만나 대화를 시작한다. 평화롭던 시간은 잠시,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돌아선다.

그리고 이사우로는 숨을 거두고 시크릴어를 쓰는 동족들이 새 세상을 산다는 '이상향'으로 떠난다.

"이사우로 씨와 함께 이상향에서 잠들었다면 좋겠어요."

▲ 배신자로 낙인찍혀 마을에서 쫓겨난 이사우로는 오직 시크릴어만 쓸 수 있다. 이사우로는 50년 넘게 외부와 단절된 채 은둔자로 지낸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컷
에바리스토 손녀 루비아의 말처럼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에바리스토는 자신의 과오를 짊어지는 것처럼 언제나 들고 다니던 의자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는 새소리로 대표하는 시크릴어를 대자연의 풍경을 더해 몽환적으로 풀어낸다.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아름다웠던 한때를 그린다.

영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오지 마을인 산이시드로에 방송되는 라디오에선 언제나 영어를 배워보자고 말한다. 이는 언어가 폭력적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또 사랑은 윤리의 범주에서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으며, 도대체 윤리라고 강요하는 무엇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간결한 대사, 많은 상징과 비유가 뒤섞인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끝까지 해석하지 않다 영화 막바지 비밀을 풀어놓는 시크릴어.

영화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라고 불리는 선댄스영화제에서 2017년 관객상을 받았다.

창원 씨네아트 리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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