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동거하며 깨달음을 구하다

조해훈(59) 시인은 심장병과 당뇨병 등으로 2017년 하동으로 스며들었다. 그동안 녹차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듯이 적어 내려간 시들이 시집 <노랭이 새끼들을 위한 변명>(빛남출판사, 2018년 12월·사진)에 담겼다.

"차산에서 찔려가며 가시나무를 제거하다/ 배가 올 것 같아 차나무 사이로 내려온다/ 차밭 군데군데 있는 묵은 매화나무/ 언제 가지를 잘라주고 정리를 해야지/ 생각하는데 가지 위쪽에 꽃이 피어있다/ 세 잎만, 나머지는 아직 봉우리만 맺혀 있고/ 예뻐 마음속이 설레며 환히 밝아진다/ 마을의 어르신들도 일하다 꽃을 보셨을까" ('매화꽃이 피었네' 중에서)

"어미 젖 떼고 좀 자란 중간 크기 고양이들 아침에 보니 다 죽어 있다 순간 자책감과 울컥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중략) 누가 너희 보기 싫어 약을 놓았을까 살다 보면 생채기 남은 마음 상하는 일 많지 않던가 (중략) 앞으로의 시간 너희에게 나는 슬픔의 대가를 치러야 하리 나는 마음 편안히 쉬지 않으리" ('몰살에 대하여' 중에서)

그의 일상이 담긴 시 모두 가만히 들이쉬고 내쉬는 심호흡 같다. 하여 시집을 다 읽고 나니 마치 묵묵히 가부좌를 틀고 긴 명상을 한 기분이다.

▲ 조해훈 시집 <노랭이 새끼들을 위한 변명>
"무쇠솥 아래 장작불이 훨훨 탄다 나무에 붙은 불, 마치 혼곤하게 잠든 듯 허물거리는 의식 서서히 깨어난다 세상의 모든 것 다 태울 듯한 불 신기해 한참 들여다본다 (중략) 내 삶은 초췌한데 군불 때는 저 파이어, 잠시도 타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리 화려할 수가, 저 속에 분명 빈곳이 있을지니" ('파이어, 군불 때기' 중에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 멸치 한 움큼 꺼내 놓고 막걸리를 마신다. 심장 혈관이 막혀 스텐트 삽입한 탓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고독이라는 이 인간의 엄청난 철학을, 사유를, 시상을, 어쩌면 병을,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막걸리를 마신다' 중에서)

시인은 구도자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가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자체가 어떤 깨달음일 것이다. 그 깨달음은 딱따구리가 놀랄까 봐 멈춘 걸음('딱따구리')이거나 마당 한구석 정구지에 물을 주는 마음('정구지')이거나, 찻잎을 따며 느끼는 평화와 고요('찻잎을 따며')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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