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피해 위로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세월호 참사 아픔·미움 털고 용기 내자

필자는 만화를 참 좋아한다. 유년시절부터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었고, 공중파에서 애니메이션을 해주는 시간이 되면 항상 텔레비전 앞에 앉곤 했다.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기도 했다. 요새는 스마트폰이다, 유튜브다 뭐다 해서 영상 콘텐츠를 훨씬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잘 보지 않게 된다. 감수성이 예전 같지는 않은가 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너의 이름은>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아내가 감명 깊게 봤다면서 필자에게 추천해 주었는데 딱 봐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몸이 바뀌는 진부한 설정에 대충 코믹과 신파를 섞은 유치한 로맨스 정도 같았다. 원래 이런 유의 애니메이션은 전혀 안 보지만 주말에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해 있었다. 아니 왜 이런 작품을 이제야 보게 되었지, 난 그동안 뭘 한 거지. 인터넷 백과사전을 검색해서 이 작품의 감독이 누구이고, 언제 개봉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고, 얼마나 흥행을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 놓친 내용은 무엇인지 샅샅이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을 한 작품이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수상을 한 작품이었다. 그 후 이 애니메이션을 도대체 몇 번이나 다시 보기를 했는지 모른다. 관련 문서를 보고 난 후 다시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관련 문서를 보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 애니메이션이 말하고 싶은 건 단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구나, 오히려 국가적 재난을 다룬 것이고, 그래서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던 일본인들에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우리에게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구나.

혜성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낭만적인 소재는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이어주는 소재가 아닌 오히려 그들을 갈라놓는 대재난이라는 설정은 꽤 충격적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같은 재난을 공유하지만, 상대방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은 그 자체로 너무나 심금을 울리게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등장인물들이 우는 장면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필자는 보는 내내 나이에 맞지 않게 많이도 울었다. 그건 두 번, 세 번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많은 아픔을 겪은 일본인들을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신카이 감독이 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감독은 큰 충격을 받아 그러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에 반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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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애니메이션은 상업영화이지만 국가적 재난에 대해서 주는 메시지와 그 영향력만큼은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당시 온 국민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처리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다. 처리과정에서 남은 건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미움, 회한과 절망뿐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의 세월호는 이제는 놓아주자. 애니메이션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스쳐지나갈 뻔한 남녀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이 용기를 내어 뒤돌아서자 해피엔딩으로 바뀔 수 있었다. 우리도 전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그 정도 용기는 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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