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50m' 직선 아닌 보행거리 기준

과다 출점경쟁으로 생존 위기에 몰린 편의점 가맹점주들을 살리고자 업계가 마련한 '자율규약'이 실효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지난해 12월 점포 과밀화에 따른 부작용을 막고자 '근접 출점 제한'을 핵심으로 한 자율규약을 도입했다.

출점 거리 제한 기준으로 '담배 판매소 간 거리 제한'을 준용해 대부분 지역에 50m가 적용되는데, 출혈경쟁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제살 깎기'식 경쟁을 막고 실질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려면, 근접출점을 제한하는 거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창원시 진해구에 이면도로 하나 사이로 두 편의점이 마주 보고 있다. 두 편의점 간 직선 거리는 20m에 불과하다. /문정민 기자

◇편의점 폐업률 치솟은 경남 = 매출이 감소하고 인건비가 오르면서 폐업하는 편의점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경남지역 편의점은 문을 여는 곳보다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유섭 의원(자유한국당)이 편의점 4개사(CU·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로부터 제출받은 출·폐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경남지역에서는 150개가 신규로 생겼고 166개가 문을 닫아 110.7%의 폐업률을 기록했다. 이는 광주(122.9%)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특히 경남은 360개 신규 점포가 생기고 106개 점포가 폐업한 2017년(29.4%)보다 폐업률이 81%포인트나 급증하는 등 전국에서 폐업 증가세가 가장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수는 전국적으로 매년 10% 이상 증가해 2014년 2만 6000개에 달하던 매장이 지난해 3만 7000개로 41.5%나 늘었다.

반면 매장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편의점 4개사의 점포당 월평균 매출액은 2016년 5320만 원에서 지난해 5140만 원으로 3.3% 줄었다.

이렇듯 편의점 폐업률이 증가하는 이유는 과다 출점경쟁, 비용 증가, 경기침체로 말미암은 구매력 하락 등으로 편의점 점주들의 수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 과도한 출점경쟁을 자제해 점주들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출점 거리 제한' 자율규약 = 편의점 과밀화에 따른 부작용이 잇따르자 업계는 인접거리에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규약을 마련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자율규약 필요성에 편의점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난해 12월 근접 출점 자제 내용을 담은 자율규약안을 도입했다.

자율규약안의 핵심은 타 브랜드 편의점 간에도 출점 거리 제한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각사 자율 규제에 따른 동일 브랜드 간 250m 거리 제한만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한 지붕 두 편의점' 논란이 나올 정도로 과다 출점경쟁이 벌어졌다.

자율규약에 따르면, 앞으로 편의점 가맹본부는 출점 예정지 인근에 경쟁사의 편의점이 있으면 50∼100m가량 거리를 둬야 한다.

협회와 공정위는 담합 오해 소지를 제거하고자 현행 지자체별로 시행 중인 50∼100m 담배 소매 지정거리(담배판매권) 규정을 적용했다. 담배 판매가 편의점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보니, 통상적으로 담배판매권 없이는 점포를 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담배판매권은 현행 법상 도시는 50m, 농촌은 100m로 담배 소매인 영업소 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구체적인 거리는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춰 결정한다.

◇실효성 의문…"거리 제한 100m로 늘려야" = 올해부터 편의점 업계의 자율규약이 시행됐지만, 출점 경쟁에 따른 가맹점주들의 피해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창원시 진해구 이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문모(53) 씨는 최근 가맹본부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지난해 8월 맞은편에 브랜드가 다른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절반가량 줄어든 탓이 크다.

문 씨는 "경쟁 매장이 생긴 뒤 점포 일 매출이 30만 원 이상 떨어졌다"며 "아르바이트 대신 직접 몸으로 때우며 버텼지만, 노동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두 편의점은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편의점 간 직선 거리는 20m에 불과하다. 편의점이 위치한 지역은 담배소매인 지정 거리 50m가 적용된다. 문제는 직선거리가 아닌 보행자 보행거리(반드시 횡단보도를 거쳐 건너가는 거리)가 기준이다 보니, 편의점 맞은편에 또 다른 편의점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점주들은 편의점 특성상 비슷한 상품군을 취급하는 만큼, 인근에 새 점포가 들어오면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0) 씨는 "인근에 다른 편의점 한 곳이 영업 중이라 완전히 나눠 먹기다. 신규 점포가 늘어나면 기존 점주들은 죽어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김 씨 역시 매출 부진에 시달리자 최근 재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에 편의점주들은 무분별한 출점 경쟁을 막으려면, 서울시처럼 담배 소매권 지정 거리가 먼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편의점 자율규약에 발맞춰 50m로 정해진 담배 판매권 제한을 100m로 늘리는 방침을 각 자치구에 권고해 이달부터 시행 중이다. 담배 판매권 규제로 편의점 신규 출점과 골목상권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자 거리제한 확대에 나선 것이다.

창원 진해구에서 편의점 두 개를 운영하는 이모(44) 씨는 "편의점이 지속적으로 출점되는 상황에서 50m로 제한해서는 아르바이트 월급도 못 준다. 담배판매권 거리제한이 확대되지 않으면 이 같은 현상은 반복될 것"이라며 "유동인구도 많고 상권도 경남보다 훨씬 발달한 서울시가 거리제한을 늘리는데, 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더 늘기 전에 경남도 이른 시일 내 거리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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