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에 30'집 찾으니 옥상 아니면 지하…아파트 이리 지어도 떠도는 이 많고 많네

싱어송라이터 김태춘(본명 김태훈) 씨는 지역 인디가수로 살아가는 일상과 음악이야기를 버무려서 글을 씁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앞으로 매월 한 차례 그의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잔뜩 경직되어 있던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계절의 공기가 속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봄에 이사를 다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복학을 앞둔 대학생, 집에서 쫓겨난 아저씨, 올해 운 좋게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아가씨, 남녀노소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복덕방을 비롯해 '방'으로 끝나는 부동산 앱과 웹사이트, 포털 커뮤니티, SNS에서 '나만의' 집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인디 가수가 건전한 인디 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도 역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게 곰팡이 눅눅한 반지하든 바람 숭숭 들어오는 옥탑방이든 간에. 엄마가 빨아주는 뽀송한 이불 덮으면서 인디 생활을 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뚜렷한 직장이 없는 인디 가수 같은 자들에게 집 얻으라고 돈을 꿔 줄 은행은 없으니 갖은 방법으로 돈 벌 궁리를 하고 절약을 몸에 배게 하여 두 발 편히 뻗을 곳을 만들어야 한다.

▲ 재개발을 하고자 오래된 주택을 허무는 부산 어느 철거지역을 지날 때 내 모습. /김태춘 시민기자

◇집 구하기

모두가 알다시피 집을 구하러 다니는 건 억 단위 이상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주 돌아버리게 힘든 일이다. 일단 가까운 동네부터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기웃거린다. 집을 보러 다니면 다닐수록 일단 육체적으로 힘이 점점 빠진다. 게다가 적은 돈이지만 그래도 힘들게 모은 돈인데 '이 돈으로 무슨 집을 구할 생각이냐'라는 듯한 부동산 아줌마의 조롱 섞인 냉대에 자괴감마저 들게 된다. 빨간 마티즈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부동산 아줌마가 '이 집 어때요?'라고 건성으로 물으면 '예 괜찮네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평양냉면 먹고 싶다'는 생각만 포레스트 검프의 탁구공처럼 어지럽게 머릿속을 튀어 다닌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삼백에 삼십으로 이태원에 가보니

수염 난 언니들이 나를 반기네

이건 내 이상형이 아닌데

오늘 밤 이 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씨 없는 수박 김대중 '300/30'

결국 우리는 그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돈과 집을 빼줘야 될 날짜는 딱 정해져 있으니까. 역시나 벽지는 곰팡이가 쑥쑥 자라고 바닥은 꺼져서 장판이 푹 들어가 있고 볕이 잘 들지 않아 바깥보다 집안이 더 추운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화장실, 누런 변기는 기본이고 세면대가 없으므로 쪼그려서 물을 틀면 벌건 녹물이 콸콸 쏟아진다. 명치를 쥐어짜는 절망감이 서서히 밀려온다.

예전에 싸게 집을 얻은 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지은 주택 단칸방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춥고 동네도 뭐 좀 지저분하고 골목에 하수구냄새도 올라오는 곳이었지만 일 마치고 집에 가면 그렇게 편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변의 집들이 허물어지고 캐슬아파트가 들어서더니 신축 원룸과 빌라가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결국 집주인도 리모델링을 구실로 일방적으로 두 달 안에 나가라는 통보를 했다. 새까만 달빛이 나의 등 뒤를 비추고 발정 난 고양이가 슬피 우는 그 밤에 내 사랑은 캐슬아파트로 떠나가고 나는 집을 잃고 울었던 적이 있다.

◇을

요즘 많이 쓰이는 '을'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집 문제에 있어서는 '을'이라는 단어보다 세입자의 처지를 잘 표현하는 말이 없다. 벽에 못질했다고 못 하나당 얼마씩 계산해서 보증금에서 떼는 집주인이 있는가 하면 원룸 옵션에 들어가 있는 낡은 냉장고 문 좀 찌그러졌다고 수리비 달라 하는 주인도 있다. 월세 올려달라고 하면 올려줘야 되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되고 다음 세입자가 안 들어오면 이사를 나가도 보증금을 못 받는다. 직장에서 받는 급여는 그대로인데 월세는 계약이 끝날 때마다 올라서 급여의 거의 반 정도를 월세로 지출하게 된다. 그 외에도 세입자가 겪는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집이라는 것은 얼마를 살든지 간에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의 삶과 영혼이 녹아 있는 곳인데 주택임대업이라는 이름으로 집주인의 이익만을 창출해내는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지금의 현실이 슬프다.

이런 서러움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을 자기 집 하나 마련하려고 버둥거리며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드디어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조금의 돈을 모아 월세방을 벗어나게 될 때쯤 전세를 알아보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원금과 대출이자의 족쇄를 벗어 던질 때쯤 직장을 은퇴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삶의 목적이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이었나 하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불행하다.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아파트가 많고 집이 많고 고층 아파트는 계속해서 생겨나도 왜 사람들은 집을 못 구해 이렇게 떠돌아다녀야 될까. 누군가는 나름대로 설명을 하겠지만 근본적인 대답은 항상 들을 수가 없다.

그렇긴 해도 아, 나의 집이란 얼마나 좋은 곳이냐. 언제든 편히 쉴 수 있고 집 구석 구석에 구질구질한 물건들이 나의 필요에 딱 맞게 배치되어있고 내 삶의 냄새와 온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곳.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집이다. 일제점령시대 만주의 돌밭을 개척하던 선조들의 심정으로 곳곳에 우리의 온기를 심어야 한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해도 벽지에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도 뿌리고, 깨지고 구멍 난 타일 위에는 서랍에 처박혀있던 무가지스티커도 붙여보자. 화장실 거울도 깨끗이 닦아보고, 우중충한 새시 위에 커튼도 달고, 동네 꽃집에서 3000원짜리 식물도 좀 갖다 놓자.

▲ 부산시 해운대구 고층아파트. 내가 저곳에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김태춘 시민기자

◇아이러니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작사자 존 하워드 페인은 가난한 방랑자 시절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여 가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 이 노래가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페인은 가정도 없이 방황하였다. 그는 친구에게 '이상하다고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노래하지만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소. 앞으로도 몸 둘 곳 없이 떠돌아다녀야 할지 두렵소'라는 편지를 보내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튀니지의 어느 길가에서 죽었다고 한다.

자주 지나치는 어느 지하도 모퉁이에서 항상 성경을 읽는 노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가끔 성경을 펼쳐놓고 삶은 달걀을 까서 먹기도 하고 1000원짜리 한 장 책갈피로 끼워 놓고 성경을 베고 잘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부터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 노숙자 할배도 낡은 성경책도 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보게 된다면 같이 평양냉면 한 그릇 먹고 싶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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