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SNS에 지배당한 나의 일상
내 에너지 이제 꼭 필요한 곳에 쓸 테다

나는 과감히 선언을 준비했다.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이 상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때라고 여겼다. 신 독립선언이다. 시기적으로도 3·1만세 혁명 100주년이 되는지라 더 없이 안성맞춤이다. 누리 소통망 얘기다. 양키들 말로는 에스엔에스(SNS)다. 카톡과 텔레그램, 밴드의 달콤하고 날렵한 공세에 휘둘려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내 일상이 지배당한 이 현실에서 나를 구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리는 꺼 놨지만 틈만 나면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열어봐야 안도하는 습관. 새로운 뉴스나 호출이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예속된 삶, 누리 소통망의 노예, 바로 그것이었다. 스마트폰에 속박된 삶. 상상도 못 했던 현상이다.

나의 독립선언은 내가 필요할 때 쓰려고 장만한 스마트폰이 되레 주객이 전도되어 나를 홀리고 휘어잡아 내 일정을 출렁이게 하는 뒤집힌 현실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겠다는 의지다.

독립선언의 공약1장은 이렇다. 스마트폰을 하루 세 번만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오전,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이다. 습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순 전달사항 외에는 카톡으로 뭔가를 의논하거나 지속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스마트폰 때문에 눈이 침침해졌다고 여긴 것도 한 원인이다.

공약2장은 내 하루 일과를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그날 하루의 할 일을 떠올리고는 여유 있게 일정을 잡되 스마트폰으로 오는 예정에 없는 연락이나 방문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변수나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무방비로 나를 드러내 놓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중 삼중으로 겹치기 약속이 생겨나는 것은 전적으로 스마트폰의 역할이 크다. 근처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친구가 심심풀이로 지금 집에 있냐고 전화를 걸어와서 만난다면 실속 없는 만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회사 영업사원의 전화에 더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공약3장도 있다. 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초대된 단체 카톡방 등 단체 누리 소통 방은 양해를 구하고 바로 되돌아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 누군가를 초대할 때는 기존의 성원에게 초대할 사람과 초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물론이요 초대할 사람에게도 취지를 전하고 동의를 구한 뒤에 초대한다는 원칙이다. 연결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함이다.

연결 또는 접속이 옛날에는 인권이었다. 그래서 국가 통신망은 시민소통권의 핵심이 되었다. 지금은 반대다. 무분별한 연결은 쓰레기이고 소음이고 전파낭비다. 집단 이메일이나 단체 누리 소통 방은 심각한 전자 쓰레기를 양산한다. 전자제품 쓰레기가 아니라 전자 쓰레기.

330원 우표를 붙여야 2~3일 만에 편지가 가는데 돈 한 푼 안 들이고 단체 카톡방에서는 수십 명, 수백 명에게 동시에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전자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공약3장은 연결로부터의 자유, 쓰레기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독립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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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는 정보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다. 내가 원하는 정보에만 엄격히 선별해서 접속한다는 것이다. 무작위 정보에 나를 무방비로 노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곁가지로 뻗어나간 정보들이 누리망이나 유튜브에 널려 있다. 정보라는 것은 일종의 자극이다. 자극은 감정과 판단을 촉발한다. 판단과 감정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무작위 정보로부터의 독립은 소중하고 제한된 내 에너지를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나 독립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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