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추억 쌓은 123일간 여정…지훈이는 아쉬움에 끝내 눈물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무사히 보내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본다. 급기야 대사관에도 물어보기로 했다.

'주프랑스한국대사관', '주스페인한국대사관'에 오토바이를 보낼 만한 업체가 있는지 문의 글을 남기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아시는 분이 부산에서 해상운송업체를 하는데 스페인 발렌시아에 파트너 업체가 있다고 얼른 거기로 가보라고 했다. 연락받은 업체에다 오토바이 사진과 서류들을 메일로 보냈더니 아무 문제 없다면서 발렌시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가 쉽게 잘 해결되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선박운송회사 '노르보카고'를 방문했다. 건물 6층에 도착하니 친절하고 유머가 넘치는 '미구엘 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오토바이 옷을 입고 헬멧을 들고 오는 게 신기했는지 계속 지훈이를 쳐다보며 빙긋빙긋 웃기만 하셨다. 미구엘 씨에게 준비된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작은 지도를 한 장 주며 '이곳이 우리 회사 항만 창고인데 여기로 오토바이를 가져가면 돼요'라고 했다. 미구엘 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 도착 후 작은 배낭에 최소한의 짐만 빼고 헬멧까지 꽁꽁 오토바이에 묶었다. 이제 그동안 함께한 오토바이랑 헤어질 시간이다. 창고 직원이 화물표인 듯 커다란 스티커를 들고 와서 오토바이 기름 탱크에 붙이고는 이제 다 되었으니 가도 좋다고 했다.

▲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지훈이와 나. /최정환 시민기자

◇삼대 여행

오토바이를 놔두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지훈이가 살짝 눈물을 흘린다.

"지훈아 왜그래? 무슨일이야?"

"아니에요."

"너 지금 오토바이랑 헤어져서 서운해서 그래?"

"그게 아니라 항상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바라보던 아빠의 넓은 뒷모습, 매일매일 달라지는 풍경들, 길 가다 손 흔들어 주던 사람들, 오토바이 소리, 바람 소리…. 이 모든 걸 더 이상 보고 들을 수 없다고 하니 그냥 눈물이 나요…."

때로는 나와 사소한 것으로 다툴 때도 있었고 낯선 곳에서는 친한 친구처럼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게 훗날 추억이 되겠지.

"지훈아, 이것으로 오토바이 여행은 끝이 났네. 그동안 아빠 따라다닌다고 고생 많았어."

"고생은 아빠가 하셨죠. 저는 뒤에서 잠만 잘 잤는걸요."

"이 다음에 커서 결혼해서 아들 생기면 그때도 아빠처럼 아들과 여행할 거야?"

"그건 아직 모르지요. 아들이 좋아한다면 갈 것이고 싫어하면 못 가는 거죠."

"아들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너도 아빠와 함께 여행했으니 네 아들도 널 닮아서 여행하자고 할 거 같은데?"

"저는 특별히 착한 아들이라서 누구보다 아빠 말 잘 들어서 그렇죠."

"착한 아들 나중에 삼대가 같이 오토바이 타고 여행 오는 건 어때? 아빠랑 너랑 네 아들 이렇게 삼대."

"좋아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제가 가이드 할게요. 이번에 아빠랑 다니며 여행하는 방법 다 알아버렸어요."

"그래. 그때는 꼭 지훈이가 가이드 해 주렴."

여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이제 아빠가 없이도 숙소예약을 할 줄 알게 되었고, 말이 잘 안통해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친해지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여행 오기 전엔 지구 반대편 이곳이 아득히 멀고 넓게만 느껴졌는데 여행을 해보니 어디나 사람 사는 곳엔 정이 있고 살아가는 방식은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럽 스페인에서 여행을 마치지만 아쉬움이 없다. 미국으로 건너가든 아프리카를 가든 이어질 여행은 어차피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깐.

▲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보내고자 찾은 발렌시아 항만 창고 앞에서. /최정환 시민기자

◇123일과 11시간

지훈이와 한국으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렌시아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바이크 없이 작은 배낭 하나 메고 다니는 우리는 다른 여행객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토바이에서는 앞뒤로 앉아서 다녔는데 배낭을 메고 나서는 아들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특별해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사람도 아니니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어 이목이 집중되지 않아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바르셀로나 국제공항 터미널에서 비행기 이륙 시간에 맞춰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고 나서 비행기 안 모니터 지도에는 현재 위치가 표시되었다.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 상공을 지나고 있었고 터키를 지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시 거쳐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 123일간 여정을 함께한 오토바이에 스페인에서 부산으로 가는 짐표가 붙어 있다. /최정환 시민기자

123일을 달렸던 길을 11시간의 비행만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초여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출발한 여행이 계절이 바뀌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니 그제야 비로소 한국에 온 것이 실감났다. 이제 주위에는 온통 한국 사람들뿐이었다. 익숙한 한글로 쓰인 간판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옆에서 자동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우리말 소리. 역시 살아왔던 곳이라 편했다. 한 시간쯤 지나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아내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123일 만에 지훈이는 엄마 얼굴을 보자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공항이 순식간에 이산가족상봉장이 되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아내에게 어떤 이야기부터 들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지훈이가 러시아에서 총을 쏜 이야기를 해 줄까? 몽골에서 말을 선물 받은 이야기를 해 줄까? 터키 바닷속에서 시계를 건져온 이야기를 해줄까? 내가 말 안 해도 지훈이가 엄마에게 몇 날 며칠 이야기를 해주겠지. 아내에게 처음 약속한 대로 '여행 가서 안 죽고 안 다치고 아들 데려오기' 임무는 무사히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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