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풍광 배경으로 4개 에피소드 녹인 옴니버스 영화
뒤늦게 가수 꿈 이루는 등장인물 오페라 〈팔리아치〉 열창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총 4가지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옴니버스로 번갈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추억에 관한 것. 로마에 휴가를 온 건축가 '존'은 자신이 젊은 학도 시절 지내던 로마의 한 골목을 찾아간다. 길을 찾다 우연히 만난 젊은 건축학도 '잭', 그는 유명한 건축가인 '존'을 알아보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존'은 '잭'에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하다.

'잭'은 그의 애인과 함께 지내고 있었고 곧 미국에서 배우지망생이자 남다른 매력을 지닌 그녀의 친구 '모니카'가 방문한다. 차츰 둘만의 시간이 많아지는 '모니카'와 '잭', 결코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잭'의 다짐과는 달리 '존'의 예언처럼 알 수 없는 매력의 '모니카'에게 빠져들게 되고 가끔씩 '존'이 나타나 뻔한 결말에 대해 충고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숨길 수 없는 것. 결국 둘은 특별한 관계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모니카'는 서둘러 돌아갈 생각으로 들뜨고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싱겁게 끝을 맺는다.

이제 '잭'은 서로를 만났던 골목으로 '존'을 배웅하고는 무심히 돌아서는데 아마도 '존'은 함께 여행 온 일행과 떨어져 잠시 자신의 추억으로의 짧은 산책을 했던 것일 것이다.

▲ 영화 <로마 위드…> 스틸컷.

◇사랑과 명성

'잭'에게 이 사랑의 결말에 대하여 계속해서 경고하고 말리던 '존',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비꼬는 듯했지만 강고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젊은 시절 스쳐갔던 사랑은 상처이면서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덧없음을 알지만 다시 한번 그때가 된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찰나의 불꽃 같은 사랑.

두 번째 에피소드는 명성,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독이자 주인공 '로베르토 베니니'가 평범한 소시민 '레오폴도'를 연기한다. 평범에 등급이 있다면 최고자리에 앉을 법한 '레오폴도'는 매일 똑같은 따분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출근길, 그에게로 몰려드는 기자들,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모든 사생활이 위태로워지지만 평소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귀빈대우를 받는다. 손님이 가득한 식당에도 그를 위한 자리는 항상 마련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그와의 하룻밤을 위해 적극적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입은 속옷마저 이슈거리가 되는 생활에 염증을 느낄 즈음, 대중의 시선은 한순간에 다른 이에게로 쏠리게 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명성의 허무함을 느낀 '레오폴도'는 길거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유명인 시절 그는 운전기사에게 자신이 왜 유명한지 물었었다. 운전기사는 이에 답을 해준다.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 영화 <로마 위드…> 스틸컷.

◇스캔들과 꿈

세 번째 에피소드는 스캔들에 관한 것. 시골에서 막 로마로 상경한 순진무구한 신혼부부 '밀리'와 '안토니오', 그들은 새로운 미래에 부풀어 있다. 자신의 머리를 단장하러 호텔을 빠져 나온 '밀리'는 길을 잃고 핸드폰마저 하수구에 빠지며 결국 곤경에 빠진다. 마침 주변에서 영화 촬영이 있고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유명배우들을 만나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바람둥이 남자배우의 수작에 호텔방까지 함께 들어간 '밀리'는 평소 연모하던 남자배우와의 스캔들을 결심하지만 마침 숨어 들어 있던 호텔털이범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급기야 배우의 부인이 호텔방을 급습하지만 호텔털이범과 '밀리'의 기지로 남자배우는 위기를 모면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지만 '밀리'는 호텔털이범과 뜻밖의 묘한 스캔들을 벌인다. 한편 남편 '안토니오'의 사정도 좋지 못하다. 방을 잘못 찾아온 콜 걸 '안나' 때문이다. 마침 찾아온 친척들에게 오해 받기 싫었던 '안토니오'는 그녀를 부인이라고 소개하고 일정을 함께하지만 온통 뒤죽박죽이다. 이후 순진한 그는 '안나'로부터 여자에 관한 조언을 받을 뿐 아니라 진짜 남자가 되는 기술까지 전수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꿈이다. 감독인 우디 앨런이 직접 '게리'로 출연한다. 낭만의 도시 로마에서 이탈리아 남자 '미켈란젤로'를 우연히 만나 마침내 결혼하기로 한 '헤일리', 그녀의 부모는 상견례를 위하여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샤워중인 장인 '카를로'의 노래를 들은 '게리'는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오페라 가수로의 데뷔를 종용한다. 뚱한 반응을 보이던 사돈도 오페라 <팔리아치>도 해 봐야지 않겠냐는 말에 넘어가 오디션을 받지만 망치고 만다. 하지만 미래사위가 비웃듯 이야기한 '샤워실에서는 누구나 가수'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 엉뚱한 기획을 하는 '게리', 그 기획이라는 것이 무대에 샤워실을 설치해 '카를로'로 하여금 노래하도록 한 것이다. 이제 '카를로'는 가수로의 꿈을 이루게 되고 은퇴는 죽음이라 여기던 '게리'는 오페라 기획자로의 커리어를 유지하게 된다. 이런 황당한 설정과 마주하면 우리는 '역시 우디 앨런' 하고 나직이 읊조릴 수밖에 없다. '카를로' 역을 맡은 이는 배우가 아닌 '파비오 아르밀리아토'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성악가이며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 영화 <로마 위드…> 스틸컷.

◇팔리아치

에피소드의 막바지 '카를로'가 출연하는 공연은 바로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오페라, 이탈리아 작곡가 '레온카발로'의 대표작 <팔리아치>이다. <팔리아치>는 이탈리아어로 광대라는 뜻으로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베리즈모'란 19세기 중엽 일어난 반낭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사실주의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들을 가리킨다. 2막으로 구성된 짧은 오페라인 <팔리아치>는 치정극이다. 주인공 '카니오'는 유랑극단의 수장으로 광대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네다'가 있지만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연극에서도 아내에게 속는 바보 남편 역할이지만 실제로 누군가 자신의 아내를 노린다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후 아내의 불륜이 의심되지만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어 누군지 말하라고 다그치게 되고 끝내 '네다'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시작 시간이 되자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를 부른다.

'아픔과 눈물을 우스갯소리로 바꾸고 / 흐느낌과 슬픔을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 아! 웃어라! 광대여! 그대의 깨어져 버린 사랑을! / 네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그 슬픔을 웃어라!'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고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한 연극의 내용으로 인해 실제 상황과 혼동한 '카니오'는 이성을 잃고 무대로 뛰어 올라가 상대방이 누구인지 말하라고 협박하지만 관객은 실감나는 연기로 오인하여 환호한다.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결국 칼로 그녀를 찌르게 되고 이때 그녀는 '실비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네다'의 정부임이 들통난 '실비오' 역시 '카니오'의 칼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곤 이렇게 두 사람을 살해한 광대는 객석을 향해 소리친다. '희극은 끝났다'.

▲ 영화 <로마 위드…> 스틸컷.

◇여행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추억, 명성, 스캔들 그리고 꿈이라는 네 가지 소주제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엮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계단을 배경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토록 아름답고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한 로마로 오라고. 늘 꿈을 지나 현실로 넘어오던 우디 앨런 감독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아름다운 도시 로마로의 일상탈출을 권하고 있는 듯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여권을 찾아 뒤적여 보게 된다.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그 조그만 수첩에는 새로운 곳을 방문한 흔적과 추억으로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는 많은 여백이 남았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지만 촘촘히 채워나갈 일이다.

'여행은 조건이 갖추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결심 후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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