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6개월 된 딸이랑 외국에서 살 줄

육아휴직(경남도민일보 기자) 중 베트남 호찌민에서 4개월간 지낼 기회가 생겼습니다. 최근 여러 관광지를 순례하는 방식의 여행이 아닌 한 곳에 머물며 생활해보는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하죠. 사람도 음식도 공기마저 낯선 공간에서 누군가는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데, 저는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베트남과 제 교집합이라고는 쌀국수 정도입니다. 맞닿은 면적을 넓혀가며 겪게 될 시행착오와 생활인 눈으로 바라본 베트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베트남, 제가 한 번 살아보겠습니다.

2년 전 경제부에 있을 때 베트남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포스트 차이나'라는 별명이 붙은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으로, 신흥 시장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또 제국주의에 항거한 역사가 우리와 묘하게 닮았으며, 최근에는 북미정상회담 개최, 박항서 감독 활약으로 더욱 친근한 나라다. 몇 해 전부터는 저렴한 물가, 안전한 치안 덕에 관광지는 물론 어학(영어) 연수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땐 몰랐다. 내가 베트남에서 살게 될 줄은. 그것도 6개월 된 딸과 함께일 줄은 더더욱.

▲ 아들처럼 나온 사진으로 딸의 첫 여권을 만들었다. 유효기간 5년짜린데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분명 항의하겠지. 재발급을 받아야 하나,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사진을 찍어줬다.

◇독박육아를 피해

베트남살이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 반응은 "부럽다"였다. 사실 누군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나 역시 부럽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닥쳤을 때 반갑기만 했던 건 아니다.

출산을 앞둔 지난해 여름 어느 날. 남편이 들릴 듯 말 듯 모기만 한 목소리로 "출장이 잡힐 것 같은데"라며 입을 뗐다. 출장이 잦은 편인데 이날따라 말끝을 흐리는 것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릴 리 없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남편 왈. "내년(2019년) 초에 베트남을 가야 해요." '비교적 가까운 베트남. 길어야 일주일이겠지' 하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남편은 재빨리 "1년 정도"라고 덧붙인다. 같이 가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얹어서.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저 복직해야 하는데요?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고, 베트남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출장 건이 재상정된 건 딸이 3개월이 되던 지난해 11월.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이 결연한 목소리로 복직에 지장 없도록 할 테니 함께 출장을 가잔다.

선뜻 알았다고 답할 수 없었다. 어린 딸을 데려가려면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기에. 그렇다고 한국에 남아 독박육아를 할 자신도 없었다.

베트남 현지 생활 여건부터 알아봤다. 먼저 자그마치 가입자 3만 명이 넘는 파워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다년간 숙련된 키워드 검색으로 비슷한 고민이 담긴 다수의 질의응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병원. 어른이야 감기에 걸려도 병원 가면 일주일, 안 가도 7일이면 낫는다지만 딸내미가 걱정이었다. 다행히 한인 거주지역에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특히 소아과)이 많았고, 한국어 통역사가 있는 병원도 있었다. 이 밖에 한국 제품을 파는 마트(온라인 주문·배달 가능), 한글 간판의 식당, 한국인 미용사가 있는 미용실 등도 있었다. 내심 '이쯤 되면 우리 동네보다 살기 편하겠다' 싶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나. 좀 알겠다 싶으니 괜한 용기가 생겼다. "여기서 육아하나 거기서 육아하나 마찬가진데, 오케이."

◇비자 발급 성공

남은 시간은 2개월 남짓. 지나고 보니 짧지 않은 준비기간이었지만, 그땐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남편의 베트남 체류 준비는 회사에서 진행했다. 딸과 내 비자 발급을 위해 먼저 딸 여권을 만들었다. 여권 사진은 흰색 배경만 있으면 되니 직접 찍을까 하다가 그래도 첫 여권인데, 사진관에서 찍기로 했다.

사진관에 들어서자 딸을 본 사진사가 흠칫 놀라는 눈치다. 거절당할까 봐 급히 "목 잘 가눠요"라고 했더니 일단 앉혀보란다. 남편이 뒤에서 쪼그려 앉아 딸을 받치고 가볍게 미션을 마쳤다.

20분 뒤 사진을 받았는데 너무 귀엽다. SNS에 올리고, 양가에도 보냈는데 아들 같단다. 이게 아닌데. 그러고 보니 가뜩이나 머리카락도 짧은데 남색 카디건을 입혔더니 내가 봐도 딱 아들이다. 엄마의 코디 미스 탓이다.

재촬영은 없었다. 그대로 도청으로 가 여권 발급 신청을 했고 4일 후 받을 수 있었다.

비자 차례다. 베트남은 체류기간 15일 이내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 15일을 넘겨 체류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했다. 관광비자 타입은 1개월과 3개월, 단수와 복수가 있다. 여행 목적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6개월짜리 상용(비즈니스)비자를 받으려면 여러모로 복잡해지니 3개월 단수 관광비자를 받기로 했다.(때문에 3개월 안에 출국해 새롭게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 받는 방법을 검색하니 1개월짜리는 베트남 이민국 홈페이지에서 전자비자(e-visa)를 받을 수 있으나, 3개월짜리는 꼭 대행사를 통해야 한단다. 대행사? 공식 지정 업체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일반 여행사에서 전자비자 발급 업무를 대행해주는 식이었다. 가격도 대중이 없다. 다시 보니 게시글 대부분은 여행사에서 올린 것이고, 일반인이 쓴 글은 '그렇다더라' 정도로 맺었다.

의심이 직업인지라 굳이 온라인으로 비자 발급을 시도했다. 이것저것 쓰라는 대로 쓰다 보니 결제 창이 떴다. 결제를 하고 3일 뒤 심사 승인 소식과 함께 대사관 초청장이 메일로 도착했다. 정상적으로 비자가 발급됐다.

희박하지만 나만 운이 좋았을 가능성도 있다. 내 경험이 못 미덥거나 영어 울렁증이 있다면 대행사를 통하는 것이 안전하긴 하다. 다만 댓글을 종합해보면 1인당 대행 비용이 1만 원부터 5만 원까지 다양하니 잘 알아봐야겠다.

▲ 딸 여권사진. 딸 같든 아들 같든 내 눈엔 사랑스럽기만 하다.

◇비싼 항공료

친정과 시댁에는 비상이 걸렸다. 4개월 동안 어여쁜 손녀를 볼 수 없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베트남이니까' 시간을 내 방문하겠다고 했다. '30만~40만 원이면 3박 4일 베트남 패키지여행도 하는데, 비행기 값은 훨씬 저렴하겠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계산에서였을 테다. 그런데 웬걸. 부산∼호찌민 왕복 항공료는 1인당 4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딸은 만 24개월 미만이라 어른 항공료의 10%만 내면 됐다. 나와 딸, 2인 항공료로 50만 원 정도 들었다.

집은 남편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얹혀살기로 했다. 대개 숙소는 숙박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하거나, 여행사를 통한다. 위치에 따라 차이가 큰데 수영장 딸린 아파트 단지의 방 2~3칸짜리 집 월세가 100만 원 안팎이다. 경우에 따라 2개월 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내기도 한다.

환전을 하면서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베트남 화폐 단위는 동(VND)이다. 동 가치는 우리나라 원(KRW)의 20분의 1 정도다.

이를테면 베트남에서 커피 한 봉지 가격이 10만 동이라면, 한국 돈으로는 5000원 정도다.

베트남에서는 주로 현금을 쓴다기에 약 340만 원(3000달러)을 환전했다. 우선 절반, 170만 원 정도를 동으로 바꿨더니 약 3400만 동이 됐다. 돈다발을 받아드니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참고로 베트남은 동전을 쓰지 않는다.

여행자 보험 가입까지 기본적인 준비는 마쳤으니 슬슬 짐을 싸볼까. 이건 뭐 이민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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