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을 오늘 마음껏 울고 웃으렴
부부는 서운한 마음이 든다…딸이 너무 빨리 크는 것 같다
 
 

휴일이다. 아내는 소파 아래에서 편안한 자세로 커피를 마신다. 서우는 찰흙 놀이를 하고, 온이는 창가에 앉아서 나무 블록으로 뭔가 만들고 있다. 나는 부유하는 먼지를 보면서 캔에 담긴 실론티를 마신다. 햇살이 들어온다. 티끌은 더 반짝인다. 5세, 7세 딸을 가진 부모에게 이런 티타임은 사소한 기적이다. 아이패드를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없어 고요하다. 그냥 시간은 먼지처럼 천천히 떠다닌다.

▲ 작은 딸들을 보면서 순간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우리 부부는 늙어가지만,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이다. 오늘 이만큼의 서우는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정인한

◇나는 낡은 장난감

육아를 하다 보면 음미라는 것을 할 여유가 없다. 식당에 가면 일단 빨리 먹고, 동시에 먹여야 한다. 식사 시간은 정신이 없다. 둘째는 많이 흘리면서 먹는다.

첫째도 혼자 먹는 것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메뉴를 고를 때도 딸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잘 먹어주는 음식이면 좋고, 잠시라도 놀릴 수 있는 놀이방이 있으면 더 좋다. 연애 시절 그렇게 곱게 먹던 아내도 지금은 빨리 먹기 급급하다. 나도 머슴처럼 먹는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덕이다. 무럭무럭 커가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통장 잔액이 많아지거나 은행에 진 빚이 가벼워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경지는 아니지만, 병아리처럼 삼키는 모습, 이어서 어떤 만족감을 표현하는 입매를 바라보면 마음이 기쁨으로 차오른다. 나이테가 생겨서 인생이 두꺼워지는 느낌이다.

아내가 온이의 입에 묻은 밥풀을 떼면서 "많이 먹고 쑥쑥 커야지"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서 하루를 반추할 때, 우리 부부는 서운한 마음이 든다. 두 딸이 너무 빨리 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 일곱 살 되는 서우에게 나는 이미 낡은 장난감이다.

어떤 날은 아빠보다 유튜브를 더 좋아하고, 반복되는 놀이에 "또 그거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육아는 화려하지 않다

놀이터를 가더라도 이제는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울릴만한 친구가 있는지 찾아본다. 그런 날이 점점 많아진다.

놀이터에서 혼자가 될 때, 나는 구석으로 간다. 등을 기댈 수 있는 담이 있어서 즐겨 찾는 장소다. 조금이라도 깨끗해 보이는 곳이 있으면 궁둥이를 붙이고 앉는다. 체력을 비축하는 차원이다. 딸이 점점 멀어져서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우의 웃음소리가 들려서 안심이다.

나는 노래를 듣거나 하늘을 본다. 서울에서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영상통화도 한다. 웹서핑도 한다. 휴대폰 화면을 밀어서 올리면 화려한 것들이 빠르게 어딘가로 넘어간다. 전래동화의 마법 거울처럼 작은 액정 속에는 많은 것이 꽉 들어차 있다. 예전에 사고 싶어서 검색했던 물건들도 뜨고, 40대로 진입하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제 차도 뜬다. 나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내가 약간은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육아는 화려하지 않다. 작다.

앉아서 상념에 빠져있는데, 딸이 터덜터덜 걸어온다. 눈물이 맺혀있다. 넘어졌거나,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다. 달려가서 작은 공주를 안아주는데, 웃음이 나온다. 같이 울어주는 것이 좋을 텐데, 계속 미소가 비어져나온다. 이런 나에게 서우는 웃지 말라고 타박을 준다. 육아를 할 때 이런 순간들이 제법 있다. 팥소가 가득 들어있는 작은 빵 같다. 조금만 깨물었는데 비어져나온다.

미안할 때는 더 적극적으로 놀아준다. 놀이터의 아이들을 모두 모아서 잡기 놀이를 하면 재미있다. 술래는 나 혼자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뛰다 보면 심장이 울리고 기분도 같이 올라간다. 무릎이 아파도 좋다. 선명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몸에 새겨져 있을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 순간도 그리움이 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그래서 딸의 모습을 찍고 그것을 비밀 공간에 올린다.

◇지금 소중한 순간들

아내가 첫째를 가졌을 때 시작한 비공개 SNS 계정이 있다. 현재 4800개의 동영상과 사진이 담긴 그 계정의 제목은 서우와 서온이의 장기 기억 저장소이다.

거기에는 뱃속의 딸들과 갓 태어난 시절의 그녀들이 있다. 특별한 설명 없는 담담한 기록이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발자취다. 내 키는 그대로이지만, 서우와 온이는 계속 성장했다. 그것이 보여서 좋다.

그러고 보면, 다시 못 올 여행지에 와있는 것 같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감정들, 점점 낡아져 가는 딸의 외투, 늘어가는 상처들을 그냥 흘려버리기에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시간과 함께 지나갈 것이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시절이 지금도 과거로 넘어간다. 딸은 점점 자라고, 그녀의 동선도 하염없이 넓어진다. 결국, 미래의 어느 지점이 상상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서우가 목말을 태워달라고 한다. 어깨 위에서 딸이 물어본다. "아빠, 안 힘들어?" 나는 괜찮다고 한다. 오늘 밖에서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집에 가면 동생한테 잘 해주라고 말하니, 서우가 "그럼요"라고 어른스럽게 답한다. 머리 위에서 웃음이 내려왔는데, 뜬금없이 서글퍼진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걸음이 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길이 좁아지고 늘어났으면 한다.

가까운 가족이 죽을 때, 자신이 무척 아플 때,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작은 딸들을 보면서 오히려 순간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우리 부부는 늙어가지만,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이다. 오늘 이만큼의 서우는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거실에 들어서니 깨끗하고 조용하다. 드리웠던 햇살도 이제 없다. 온이와 아내는 낮잠을 자는 것 같다. 이것도 사소한 기적이다. 아직도 휴일. 서우가 심심하다며 뭔가 꺼내러 간다. 나는 포트에 물을 올린다. 커피 믹스를 마실 참이다. 놀이 매트 위에서 딸의 흔적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잠이 온다. 나는 잔에 담긴 커피를 그냥 마시고, 남은 시간을 음미할 생각이다. 우리 카페의 진득한 에스프레소가 그립다. 그렇게 그리워할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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