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같았던 개학 연기 통보
'행복한 아이'교육철학 어디갔나

큰맘 먹고 올해부터 아이를 사립유치원에 보내게 됐다. 다니던 시립어린이집에 원아가 줄어들면서 합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합반이 뭐 별건가 싶다가도 아이와 친한 친구들이 모두 다른 유치원에 간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집 근처 유치원에 대기를 걸었더니, 두 달 만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시립어린이집 기준으로 3배가 넘는 입학금과 학비를 내고 입학 절차를 밟았다.

입학 이틀 전인 주말에 문자가 왔다. 개학일을 연기한다는 일방적 통보와 함께 '유아 학비 학부모 직접 지원', '국공립과 동일한 무상교육'을 지지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끝에는 교육부 담당과의 대표번호도 적혀 있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월요일 오전에 업체 미팅이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학부모가 직접 원에 전화해 아이 이름을 말하면 긴급보육이 가능하다는 말에 일단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통화 중.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이번에 입학하는 ○○○ 어린이 어머니시죠?"라는 담당자의 말에 기세가 훅 꺾였다. 혹시나 강하게 말을 했다가 불똥이 아이에게 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본능적으로 들었다. 아이의 반과 이름을 말하자, 자동응답기처럼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긴급보육이라고 했지만, 정규시간 그대로 마치고 점심도 제공됩니다. 걱정 마시고 맡겨주세요."

당장 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나는 "예,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무기한 개학 연기였지만, 긴급보육을 빙자한 정상 등원이 가능했다. 이 어이없는 쇼가 뜻하는 건 뭘까. 학부모와 아이를 볼모로 삼아 한유총이 챙기려는 것은 뭘까. 하지 못한 말들로 목구멍이 꽉 막혔다.

월요일, 무거운 마음으로 유치원을 찾았다. 입구에는 뉴스 취재진이 서 있었다. 아이를 마중 나온 선생님이 말했다. "절대 인터뷰하지 말아주세요." 그날 저녁, "화가 납니다"로 시작하는 나의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속이 후련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답답했다. 비싼 돈을 내고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이유는 국공립의 시설이 적기도 하지만, 남다르게 키우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도 작용한다. 교육철학이 좋아서 선택한 사립유치원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아이'를 그리는 원의 교육철학과 이번 행보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아이와 돌봄자를 볼모로 잡아 거래하겠다는 모습은 교육자보다 장사꾼에 가까웠다. 개학 연기는 하루 만에 철회됐지만 결국 퇴소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아이도 동의해 주었다.

퇴소하겠다는 말에 담당자는 친절하게 안내해주며 원의 정보가 담긴 책자를 회수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외부에 유치원 정보가 알려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오티에서도 학비를 SNS에 게시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사립유치원은 오티에 직접 참가하지 않으면 입학 정보를 찾는 것도, 학비를 알기도 어렵다. 불투명한 정보를 찾는 것은 모두 학부모의 발품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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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3법의 핵심은 투명한 회계 도입과 유치원 평가 정보에 대한 학부모의 접근성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시 본 개학 연기 문자에는 '이제는 학부모의 권리를 되찾아야 할 때'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아이가 가는 유치원이 어떤 곳인지, 학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쉽게 알고 싶다. 그것이 학부모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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