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지배·관리하에 피신
근로복지공단 구상권 미청구
"차별 개선 늦었지만 다행"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정부 단속을 피하다 사고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게 된다.

근로복지공단은 불법체류자 단속 피신 중 발생한 사고의 업무처리요령을 시행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2006년 대법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정부 단속을 피하다 입은 재해에 대해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을 내린 지 13년 만이다.

미등록 상태에서 취업한 이주노동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단속을 피하다 발생한 사고 가운데 사업주가 미등록인 것을 알고, 단속 과정에서 적극적인 도주로 사고가 발생했거나 일련의 행위가 업무수행과 관련이 있는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게 된다.

이주노동자 피신 행위가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판단되면 산업재해보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피신 과정에서 남의 차량을 탈취하거나 단속반에 맞서 폭행 등 대항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고의나 자해, 범죄행위·사적행위에 따른 것은 제외된다.

근로복지공단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밝혔다. 출입국·외국인청 소속 공무원이 적법한 절차로 공무수행 중에 발생했다는 이유다.

이번 지침은 지난 9일부터 시행됐으며, 현재 처리 중인 사건이나 이의제기건에도 적용된다. 이에 따라 지난달 25일 김해시 한림면 한 공장에서 일하다 법무부 단속을 피하다 뇌진탕 증세로 의식을 잃고 입원한 베트남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 보상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지침 시행 이전 3년까지는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공단이 지침을 바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겠다고 했으나 법적으로 다툴 소지는 남았다"고 말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센터 소장은 "일하는 시간에 발생한 문제인 만큼 산재처리는 벌써 이뤄졌어야 했다. 한국인은 업무상 재해를 받을 수 있는 사례였음에도 그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던 차별이었다"며 "지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한 해 평균 이주노동자 108명이 사망했던 점으로 미뤄볼 때 재해 인정이 너무 늦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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