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 숨은 이름 '여성'재조명 계속돼야

<경남도민일보>는 경남지역 독립운동사에서 잊히거나 지워진 '이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그간 남성 중심의 역사 편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약한 자, 여성이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 최전선에 섰던 김명시, 여성·계급해방에 앞장선 김조이, 신사참배를 완강히 거부한 최덕지·조수옥·김두석, 기생단을 조직해 만세운동을 벌인 이소선·정막래, 노동쟁의와 여성단결을 이끈 김계정·제영순·조복금, 그리고 최봉선과 김금연 등 수많은 학생항일운동가입니다.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족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몸을 던진 이가 절대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삶 일부라도 복원하고 알려야 했습니다. 경남도와 창원시 등 지자체도 여성독립운동가 발굴과 재조명에 동참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형 이벤트 가운데 일회성 사업'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절실합니다.

▲ 경남지역 국가유공자 현황.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지자체·정부 움직임 = 지자체와 정부가 최근 들어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을 본격화했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지난 1월 7일 간부회의에서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이 그동안 미미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지역에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소외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며 창원 출신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지시했다.

이후 창원시 근현대사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지난달 '여성독립운동가 발굴 추진'을 검토했고, 시 사회복지과는 독립운동사 책자 제작·배포, 학술심포지엄 개최, 독립운동가 발굴·접수 등 세부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전체 읍·면·동에서는 서훈 신청자료 작성 예시와 증빙자료 등을 알려주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미래세대에 역사를 알리려는 취지다. 경남대표도서관에서는 이달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영화도 상영한다.

최근 유관순 열사에게 추가로 최고 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 여론이 다시금 형성된 것도 고무적이다.

국가보훈처는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연구 용역과 자료 보완, 심사 절차를 거쳐 70명가량을 포상했고, 추가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록 관리·협업 연구체계 갖춰야 =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일제강점기 당시에 관한 직접 증언이나 구술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많은 당사자와 목격자, 후손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는 관련된 기록이 더 부족해 서훈이 되기까지 힘겹거나 아예 문턱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은 "창원 출신 김조이, 김명시 등은 그나마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 그야말로 무명의 여성독립운동가는 기록이 없다"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혼자가 아니라 집안 전체가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형무소 생활을 하면 남은 가족은 옥바라지로 경제적 고통도 컸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와 관련한 수많은 기록을 장기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여성을 비롯해 숨어 있는 인물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와 연구단체가 협력해 여성독립운동가 발굴과 포상 결실을 거두는 곳도 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인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해부터 내년 2월까지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자체-연구자 협업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향토사학 중요성도 확인했다. 한 예로 <진해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를 펴낸 향토사학자 황정덕 선생이 지난 2015년 별세했다. 서적 1000여 권과 사진, 지도, 비디오테이프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서 기증한 인물인데, 뒤를 이어 진해지역 항일운동사를 파고드는 이를 만나기 어려웠다.

경남지역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했던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향토사학 맥이 끊기면서 관련 연구가 중단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학계와 향토사학자가 힘을 모으면, 지역과 한 마을의 역사 나아가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끝>


▲ 광복회 경남지부 김형갑 지부장.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김형갑 광복회 경남지부장 "경남 유공자 21명 교육 통해 알리자"

"세월이 많이 흘러 상세한 내용을 담기에는 늦은 감이 있지만,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여성독립운동을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광복회 경남지부 김형갑(82) 지부장의 말이다. 김 지부장은 여성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에 소홀한 감이 있었고, 당사자나 가족이 말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서울 중앙회 회의에서도 여성독립운동단체와 함께 이야기했는데, 제한된 범위에서 독립운동가 서훈을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관해 서로 조언하고 앞으로 협조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김 지부장은 경남지역 전체 독립유공자와 여성독립운동가 포상 분석 자료, 지역 인물 자료를 모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살펴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유관순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지만, 경남에도 20여 명의 여성 독립유공자가 있지요. 우리가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아울러 이 같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은 교육을 통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독립운동가 김선오(金善五·1865~1919)의 손자다. 김선오는 1919년 4월 12일 김해 장유면 무계리 독립만세시위에 뛰어들었는데,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이런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열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게 된 김 지부장의 아버지도 역적으로 몰리며 구타를 당하고 몸을 크게 다쳐 고생했다고 한다. 김 지부장이 초등학교 2학년 나이일 때 해방을 맞았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 이야기를, 그리고 일제강점기 쓰라린 고통의 역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1996~1997년 할아버지 분묘를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광복회에 발을 디뎠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을 포함해 경남지역 독립운동가 발굴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경남에 연고가 있는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계속 알아보고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보았으면 합니다."


▲ 김남영 경남동부보훈지청장.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김남영 경남동부보훈지청장 "여성항일운동에 꾸준한 관심 절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게 뒤에서 지원한 여성의 역할도 독립운동으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남영(57) 경남동부보훈지청장은 경남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인식 전환과 관심'을 꼽았다.

일제강점기 남편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면 가정은 오로지 아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남편 옥바라지는 물론 아이 뒷바라지까지. 남성 못지않게 항일 투쟁을 해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사 속에 묻힌 여성들도 많다.

김 지청장은 "여성이 아내 또는 가족 일원으로 남성의 독립운동을 돕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며 "이제 이름도 없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가족으로 활동했던 여성독립운동가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중 여성은 2%대로 그간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은 소외됐다. 정부의 여성독립운동가 발굴 의지와 자료 부족, 수형 3개월 등 서훈 기준 미달 등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서훈기준을 개선했다. △관련 인사의 일기와 회고록 등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 △독립운동에 참여한 부모나 배우자·자녀 등 활동내용과 정황자료를 참고해 서훈심사를 했다. 이를 통해 여성독립운동가 202명을 발굴했다.

김 지청장은 "여성의 경우 직·간접 자료로 독립운동 사실이 있다고 판단되나 활동내용이 객관적인 자료(해방 이전)에서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다"며 "현재 여성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는 분위기이며 올해 범정부적인 독립운동사료수집협의회를 추진 중이니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진한다. 지난달 독립운동가 333명을 포상했고 광복절을 맞아 지난해 여성과 의병 발굴자에 대한 포상도 진행한다. 경남동부보훈지청은 '원(one)대한민국 만세'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 지청장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청장은 "개인적인 바람은 예산이 좀 더 투입돼 보훈처와 향토사학자 간 협력체계가 구축됐으면 한다"며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꾸준한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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