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에서 경남미술 정체성 찾는다
서구철학 중심 전시 탈피 의지
"문화는 지역성을 다루는 것"
9월 경남 근대미술사 재조명

김종원(64) 서예가의 경남도립미술관장 취임을 두고 전무후무한 일이라고들 말한다. 현대미술 중심의 국공립미술관의 리더가 서예가니 말이다. 이에 대해 김 관장은 서(서화)야 말로 서구 미술 도입으로 변모한 한국 미술의 시대성을 짚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오래전부터 안은 고민을 풀어놓겠다고 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의 정체성은 뭘까. 나아가 경남미술은. 더 나아간다면 경남도는?

"10여 년 전부터 미술관을 책임지고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누구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김 관장은 경남도립미술관은 전시와 소장품으로 자신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는 '좋은' 전시와는 다른 얘기다. 그런데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많은 학예사가 서구 중심 철학을 토대로 전시를 기획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미'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예전을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서구 미술과 마주했다. 그러면서 서화는 미술의 한 분야가 됐고, 이는 전근대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인식까지 생겼다. '미'의 인식이 한순간에 달라진 것이다. 문화는 우위를 다루는 게 아니라 지역성을 다뤄야 한다."

그는 서예가로서 한국 미술의 맥을 제대로 짚어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서예가 미술이 아니라는 미술계 인식에 대해 모노화의 선구자인 이우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1912~1956),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도 서예를 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경남 미술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서구 문화가 들어온 후 어떻게 무너졌고 어떤 형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살피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오는 9월 경남도립미술관이 한국전쟁 이후 경남 미술의 근대화 과정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전 '도큐멘타 경남'도 하나가 될 것이다.

"올해는 이에 대한 방향성을 구체화할 것이다. 이는 미술관 혼자서 해내는 게 아니다. 현장 작가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는 미술관과 지역 미술인의 수월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경남 미술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고 했다.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기획전이 열리는 전시실 앞에서 김종원 관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지 기자
"미는 자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이다. 미술관은 어떤 작품을 언제 보여줄지 연구해 시민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에게 긴장감을 줘야 한다. 미술관은 독립성이 보편성을 끌고 가는 곳이다."

김 관장은 리더의 철학과 학예사의 능력이 합을 이룰 때 미술관이 비상할 수 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하지만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사정은 아주 열악하다. 2004년 6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도 단위 미술관이지만 미술관 학예 인력은 15년간 5명에 머물고 운영 예산도 인근 부산과 대구 지역과 비교하면 훨씬 적다. 학예사 4명이 연간 기획전시를 2회 이상 진행하며 교육, 학술, 홍보, 소장품 구입, 수장고 관리까지 맡고 있다. 10명 안팎으로 운영하는 부산시립미술관과 대구시립미술관 등의 절반에 불과하다.

앞으로 도민들의 문화 욕구는 더 다양해지고 경남 미술사 정립 등 경남도립미술관이 해내야 할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경남도립미술관의 현 구조는 이를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신임 관장의 포부와 계획도, 학예사들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도 인력 충원과 예산 증가가 있을 때 가능하다. 결국 예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동안 창원 다호리에서 발견한 붓의 역사성으로 문자의 현대적 의미와 미래를 내다보는 '문자문명전'을 창원에서 열었고, 서(書)로 미의 길을 개척해온 김 관장. 그가 앞으로 미의 존재성과 경남 미술의 정체성이 어떻게 발현할지 기대된다.

한편 경남도는 지난 1~2월 개방형직위(도립미술관장) 임용시험을 거쳐 4일 김종원 서예가를 관장에 임명했다. 임기는 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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