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뼈 깎아 대우조선 살려놨는데
노동자 위기 내모는 동종사 매각이라니

대우조선해양은 원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작품이 아니다. 현대조선 정주영 회장이 오백 원 지폐를 들고 쫓아다니며 조선 산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비전을 보이자 정부는 조선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한조선공사 남궁련 사장을 내세워 현대조선에 버금갈만한 조선소 건설에 착수한다.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마땅한 적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우선 수심이 충분해야 하고 조수 간만의 차가 작어야 하며 수백만 평방미터의 배후 부지와 넓은 공유수면이 필요했다. 거기다 대형 크레인 사용이나 안벽 작업에 지장을 주는 바람·파도를 막아줄 지형적 조건도 맞아야 했다. 남해안을 이 잡듯 훑고 다니던 남궁 사장이 당등산 옥포정에서 내려다본 옥포만은 그야말로 천혜의 적지였다.

느태 뒷산과 파랑포가 감싸 안은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옥녀봉과 국사봉이 바람막이로 둘러섰으며 당등산 좌우 아주리와 아양리의 제법 너른 들이 있다. "바로 여기다!"라고 무릎을 친 남궁 사장은 곧바로 부지를 매입하고 아주리와 아양리 4개 마을 주민들을 장승포의 능포와 옥수에 주택을 지어 이주시키고 73년 10월 공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우선 부지 한가운데 우뚝 솟은 당등산을 깎아 바다를 매립하여 전체적인 평탄 작업을 하면서 아주천의 물길을 틀어 부지 외곽으로 돌리는 데 만해도 1년이 넘게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외자 도입이 어려워져 공사 진척이 지지부진해지고 지원을 하던 정부도 뒤로 물러나면서 남궁 사장은 사면초가에 몰린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버릴 수 없었던 정부는 자금력과 경영능력을 갖춘 새 사업주를 찾게 되었고,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이를 승계하여 한적한 어촌이었던 아주, 아양을 세계 조선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농이 돌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조선소가 대우그룹의 방만한 경영으로 공중분해 되면서 워크아웃을 맞는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임금동결로 노동자들의 뼈를 깎아 채 2년이 안 돼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기사회생하여 수주량 1, 2위를 다투었다. 그러나 또다시 몸집 불리기 경영은 수조 원의 적자를 내고 국민의 혈세를 수혈받아 연명하게 된다. 2015년 조선경기 침체와 분식회계 사태는 노동자들에게 '옥포의 눈물'이라 불리는 구조조정과 임금동결의 칼바람을 안겼다.

위기 때마다 노동자들의 피땀을 짜고 뼈를 깎아 살려낸 그 조선소가 며칠 전 새 주인을 맞는 계약을 했다. 하루빨리 주인을 찾아 정상적인 경영으로 탄탄하게 되살리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칼자루를 쥔 자들이 정상적인 절차도 없이 어느 날 불쑥 같은 조선업을 하는 회사에 팔아치웠다. 식당에서 매각 반대를 외치는 뉴스를 보던 분이 혈세 먹는 하마를 주인 찾아주니 앓던 이 빠진 듯한데 왜 저러냐고 묻는다. 조선소에서 일해 본 친구도 현대 기아차의 선례가 있는데 이 조선소가 죽어야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동종사에 매각되어 야기되는 많은 문제 중에 조선소 노동자로서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진짜 주인이 누군데? 마름들 굿판에 왜 또 우리 주인들이 작두를 타야 하는데!" 이 조선소를 일구고 살린 것은 김우중도 산업은행도 현대중공업도 아니라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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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옥포조선소에는 느태라는 곳이 있다. 늦게 해가 뜨는 곳이라 '늦 해'가 발음대로 느태란 지명이 된 곳이다. 늦게 뜨지만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이기도 하다. 주인의 마음으로 가장 저물녘까지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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