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선남발전사〉 수록
근대 주천강변 모습 눈길

주천갑문의 준공 직전 사진이 <경남도민일보>에 확보됐다. 1913년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가 발행한 <선남발전사(鮮南發展史> 경상남도 편에 들어 있는 것을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받아 내릴 수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www.museum.seoul.kr)은 이를 비롯한 여러 근·현대 사진을 소장 유물 정보로 삼아 아카이브에 갈무리해 놓고 '공공누리 출처 표시+상업적 이용 금지 조건'으로 일반에 제공하고 있다.

▲ 낙동강반의 촌정농장갑문. /서울역사박물관

첫 번째 '낙동강반의 촌정농장갑문(洛東江畔の 村井農場閘門)' 사진을 지금 모습과 견주면 원래는 오른쪽도 왼쪽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한가운데와 왼쪽 어깨 부분에만 글자가 있는데 사진에서는 오른쪽 어깨에도 글자를 새긴 직사각형 문패가 보인다.

주천강 강물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아 바닥까지 모두 드러나 있는데 그 높이가 적어도 두 길(3.5m가량)은 되어 보인다. 사람들이 모두 정면을 향하고는 있지만 커다란 나무사다리가 걸쳐져 있는 것을 보면 작업을 하던 중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 낙동강반의 촌정농장급수장. /서울역사박물관

두 번째 사진은 '낙동강반의 촌정농장급수장(洛東江畔の 村井農場給水場)'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 사진과 마찬가지로 낙동강이 아니고 그 지류 주천강이다. 제방 왼쪽에 건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무로 만든 듯한 다리가 보이는 가운데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솟아 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하천에서 물을 끌어올리려면 인력(人力) 말고는 쓸 수 있는 동력이 없었던 것이다. 소나 말을 쓸 수도 없었고 전기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촌정농장은 인력 없이도 물을 퍼올릴 수 있도록 양수 펌프를 여럿 설치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동력은 증기(蒸氣)였다. 나무를 태워 물을 데우고 거기서 나오는 수증기의 압력으로 펌프를 돌렸다. 그때는 기차도 증기 동력으로 움직였다.

▲ 낙동강반의 촌정농장. /서울역사박물관

세 번째 '낙동강반의 촌정농장'을 보면 소 여섯 마리와 일하는 농부들 가운데 말 탄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오른편으로 가느다란 줄이 사선으로 나타나는데 채찍질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왼편 사람은 뒷짐을 졌는데 제대로 일하는지 감독하는 마름(舍音)인 것 같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