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솟은 산방산 저기 오는 새봄 지그시 보고 섰네
알록달록한 호곡마을 풍경 가던 발길 붙들고 놓지 않고
작은 텃밭에 담장 옆 나무에 계절은 지긋이도 다가온다

아차차…, 신거제대교가 아니라 구 거제대교를 건넜어야 했나 봅니다. 통영을 지나 거제 둔덕면으로 가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릴 생각이었습니다.

신거제대교를 지나왔지만 빠져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시원하게 길이 뚫린 도로 위로 차들이 제법 빠른 속력을 냅니다. 이대로 휩쓸렸다가는 거제 중심지인 고현까지 가버릴 기세입니다. 아, 다행히 곧 빠져나갈 길이 나오는군요. 둔덕 방향으로 다시 방향을 잡습니다. 오른쪽으로 신거제대교와 함께 통영 쪽 풍경이 아주 멋집니다. 바닷가 능선을 따라 집들이 층층이 자리를 잡은 모습이 상당히 이국적이네요. 지도를 보니 통영시 용남리 장평리 견유마을과 신촌마을이군요. 다음에 저기도 한 번 돌아다녀 봐야겠습니다.

▲ 청마기념관 주변에 핀 매화와 그 너머 보이는 산방산. /이서후 기자

신거제대교 아래를 지나니 조금 번화한 곳이 나옵니다. 간판들을 보니 견내량이란 곳이네요. 어? 어딘가 익숙한 이름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이 시작된 곳이군요. 이곳에 모인 왜선을 한산도까지 유인해 크게 이겼다는 전투입니다. 견내량은 정확하게 통영 용남면 장평리와 거제 사등면 덕호리 사이 해협을 말하는군요. 바로 신거제대교와 구 거제대교가 연결된 지점입니다. 오, 이 바다에서 나는 돌미역이 유명한가 보네요. 임금님한테도 올리고, 이순신 장군도 먹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달리니 구 거제대교가 나오네요. 통영과 거제 사이에 다리가 두 개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오는 길에 구 거제대교 가는 길 표지판을 언뜻 보고 저게 뭔가 싶긴 했습니다. 구 거제대교 아래 주차할 공간이 많이 보입니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구 거제대교는 단순하지만 꽤 듬직하게 생겼습니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신거제대교가 날렵하고 산뜻하고 선명한 것이 바다를 가로지른 인간의 힘을 보여준다면, 구 거제대교는 바다를 건너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거제 역사 발원지라고 적힌 둔덕면 표지석. /이서후 기자

구 거제대교 주변을 벗어나면 바로 시골길이 이어집니다. 곧 둔덕면 표지판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가 둔덕면이군요.

제가 왜 둔덕면으로 오려 했느냐면,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거든요. 보통 거제를 오게 되면 신거제대교를 지나 바로 고현 방향으로 가거나 거가대교를 타고 오니까 둔덕 쪽으로 올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한 번 가보자 싶었지요.

둔덕면 표지석에 거제 역사의 발원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둔덕 지역에는 둔덕기성처럼 무신의 난으로 쫓겨온 고려 의종과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요. 당시에는 이곳이 거제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있는 상둔, 하둔, 농막, 마장, 거림, 시목, 유지 같은 지명이 이때 생긴 것이라 합니다. 지난해 둔덕면을 고려면으로 바꾸자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다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 어쨌거나 해안도로는 해안도로입니다. 바다 풍경에 눈이 즐거우니까요. 조금 달리다 보니 바다 건너편 섬이 보이고, 통영 쪽에서 그 섬과 연결된 예쁜 다리가 보이네요. 전망이 트인 곳에서 사진을 찍어 볼까 하는데, 도로가 좁아 차를 세울 곳이 없네요. 할 수 없이 그냥 지나쳤다가 결국 차를 다시 돌렸습니다. 이렇게 한번 풍경을 놓쳐 버리면 그 풍경을 평생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인가 후회를 하기도 했고요.

지도를 찾아보니 통영에 속한 해간도라는 섬입니다. 통영에서 가장 육지와 가까운 섬이랍니다. 2009년 9월에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이 됩니다. 다리가 정말 예술입니다. 저렇게 부드럽게 솟은 곡선이라니, 어디 가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해간도와 다리뿐 아니라 작은 섬들과 어선과 그 너머 통영 땅이 바라보이는 바다 풍경이 다 예쁘네요.

▲ 탁 트인 바다와 알록달록한 호곡마을 풍경. /이서후 기자

바닷가를 따라 쭉 달리다가 호곡마을 풍경이 다시 발길을 붙잡습니다. 붉고 푸른 지붕들이 선명해서 눈이 다 상쾌해집니다. 호곡마을 앞바다는 온통 양식장 부표로 가득합니다. 근처에 계시던 어르신에게 여쭈니 꿀(굴)과 멍게 양식이라고 하네요. 굴을 '꿀'이라고 하는 걸 남해군에서는 더러 들었는데, 여기도 이렇게 부르는군요.

둔덕면사무소를 지나고서는 해안도로를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갑니다. 청마 유치환 기념관과 생가에 가보려는 겁니다. 이곳에 청마 생가가 있다는 걸 오는 길에 표지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깃발' 중에서) 같은 멋진 시들을 많이 지으셨는데요.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행복' 중에서) 같은 따뜻한 시가 더 좋더라고요. 하지만, 청마기념관에 가면 시인이 고향에 대해서 쓴 '거제도 둔덕골'이란 시를 꼭 읽으셔야겠습니다.

▲ 청마 유치환 생가 내부. /이서후 기자

"거제도 둔덕골은/ 8대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안 다가솟은 산방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은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거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번이나 불어 왔던가(후략)"

유치환 생가는 반듯한 초가집으로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마루 밑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꿈쩍도 않고 누워 저를 바라봅니다. 애써 그 존재를 모른 척 가만히 마당을 거닙니다. 집 뒤편 반듯한 담벼락 아래 텃밭에는 마늘이며 상추가 가지런히 자라고 있습니다. 담 너머로 보니 둔덕골에도 매화가 한창입니다. 오는 길 주변 논바닥에 스멀스멀 봄기운이 움터 일어나던 것이 생각납니다. 생가 지붕 너머로 벗고 섰는 뒷산(산방산)이 불쑥 솟아, 지긋이 다가오는 이 계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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