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8호실서 인간 유관순과 마주하다
3·1운동 후 1년 동안 수감
만세 외쳤던 여성들 조우
독립 향한 굳은 의지 그려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일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그중 앞장서서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1919년 이후의 유관순을 알고 있는가.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1902~1920년)이 만세 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던 1년을 그렸다. 영화는 강인한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소녀의 진짜 모습을 담았다.

유관순(배우 고아성)은 서울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다 고향 천안 병천으로 돌아와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매일 밤 손수 태극기를 만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도 이를 지지한다.

병천 아우내장터에도 "대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곧이어 총성이다.

유관순은 체포되고 보안법 위반 등으로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 갇힌다. 수감번호 371번, 징역 3년이다.

◇무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8호실 문이 열렸다. 수인 24명이 좁은 감옥을 빙빙 돌고 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며 날마다 돌고 도는 여성들. 이들 또한 만세 운동을 부르다 잡혔다. 이 중에는 유관순을 탓하는 이도 있다. 동네 사람들을 꼬드겼다고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들이다. '또 다른 유관순'.

이들은 함께 생활하며 연대한다. 누울 자리가 없어 순번을 정해 잠을 청하고 매번 부족한 배식이지만 배가 부른 임부에게 보리밥을 건넨다.

기생들의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김향화(배우 김새벽)의 노랫소리는 힘이 되고 다방에서 일했다는 이옥이(배우 정하담)와 선배 권애라(배우 김예은)도 유관순의 든든한 동료가 된다.

영화 주요 배경이 세 평도 되지 않는 8호실 좁은 감옥임을 고려할 때 이들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는 흑백 화면의 단조로움을 잊게 한다.

유관순은 날짜가 궁금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그렇다면 곧 3월 1일이다.

그녀는 노역을 자청한다. 제일 힘들다는 세탁장 일로 지문이 닳아 없어지지만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날을 세며 다시 만세를 부를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1920년 음력 3월 1일 오후 2시. 유관순은 독립선언문을 읊는다. 8호실에서 "대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진다. 만세는 서대문형무소 다른 방으로 이어졌고 바깥에서 이 소리를 들은 시민들도 다시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독방에서 생을 마감하다

▲ 영화 〈항거…〉에서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위 사진) 수감된 여성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스틸컷
유관순은 주동자로 낙인찍혀 모질고 혹독한 고문을 받고, 홀로 8호실에 남는다. 다른 수인은 감형을 받아 출소했다.

일주일 넘게 서 있어야 하는 독방에서, 빛 한점 없는 지하실에서도 꿋꿋했던 그녀는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는 1920년 9월 28일 출소 이틀을 남겨두고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다.

그리고 영화 크레디트. 그녀의 시신은 은폐되었다가 이화학당의 항의로 인도되었지만, 일본의 비행장 건설로 유실되고 말았다는 글과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 갇혔던 25명의 얼굴이 스크린에 띄워진다.

유관순은 17살의 천진함이 있었다. 또 만세 운동을 의무라고 여겼기에 다른 어느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보지 않았다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또다시 만세 운동을 도모한다.

영화 관람 이후 몇몇 잔인한 고문 장면보다 유관순을 열연했던 고아성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과 존경심 때문일 것이다. 아주 유명해 피상적으로 상징적으로 알던 인물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항거:유관순 이야기>.

이제 아주 평면적으로 그녀를 기억할 수 없다. 또 유관순 열사만 새길 수 없다. 8호실에 있었던 다른 24명의 여성들. 또 다른 방에서 또 다른 형무소에서 만세 운동을 불렀던 아무개 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는 도내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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