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목동의 걸음을 닮은 강

하동 섬진강은 느릿느릿 흐른다. 배부르게 풀을 뜯긴 소를 천천히 몰고 내려오는 목동을 보는 듯하다. 낙동강은 그렇지 않다. 낙동강은 나무를 잔뜩 얹은 지게를 진 채 서둘러 내려오는 초동의 걸음걸이를 닮았다.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물줄기가 몸을 싣는 언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까. 낙동강은 폭이 넓어진 다음에도 깎은 듯한 언덕이 있기 십상이다. 반면 섬진강은 폭을 어지간히 넓힌 뒤로는 언덕을 멀리 밀쳐 놓은 채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모래톱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낙동강은 흐름을 따라가려면 다리를 바쁘게 놀려야 한다. 섬진강도 그런 곳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동 포구 아무 데서나 흐르는 모양을 가만 지켜보면, 이 물이 과연 흐르기는 흐르는지 의문스러울 때조차 있을 정도다.
바닷물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조금 전 정오 무렵에는 물이 쫙 빠져나가 모래밭이 속살을 마음껏 드러내었는데, 다섯 시를 지나 저녁 무렵이 되면서 물은 흐르지 않고 오히려 아래쪽에서 차오른다. 바닥의 기울기가 여느 강보다 덜한 데다 너른 하구 광양만을 적시던 바닷물이 하동 읍내까지 손쉽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읍내 송림에서 최참판 댁이 자리잡은 평사리 들머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줄곧 섬진강을 끼고 달린다. 왼편으로는 부드러운 강여울이 배밭이랑 강둑과 어울리면서 이어지고 오른쪽 야트막한 산으로는 연두빛 또는 흰색 밤꽃이 한창 흐드러져 있다.
자전거를 타기에 아주 알맞은 길이다. 눈맛도 더욱 좋고 느낌은 한결 시원하다. 거리가 15km 남짓 되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버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사리까지 꼭 가지 않아도 되니까, 읍내에서 3~4km밖에 안 떨어진 흥룡마을이나 ‘호림석재’라는 돌공장까지만 갔다와도 된다. 강가 언덕도 멋지고 바라보는 강여울도 아름다운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 이처럼 여러 풍경을 눈여겨볼 수도 있고, 얼른 멈춰서 강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 좋다. 하지만 근본 이유는 좁은 샛길이나 강둑길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데 있다. 자동차로 달리는 찻길은 곳곳에서 강물과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자전거는 강줄기를 줄곧 눈에 담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햇살은 따갑지만 강바람은 시원하다. 아무데서나 그늘 아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으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다 뜯어보기도 전에 땀이 식는다.
강가 모래밭에는 파라솔이 꽂혀 있고 20대들이 무리지어 왁자하게 떠들고 있다. 누군가를 풍덩 물 속에 집어넣은 모양인데, 조금 떨어진 데서는 청춘 남녀가 아랑곳없이 산책을 한다. 물에서는 여름이 그리운 아이들이 성급하게 하동(河童)이 되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돌보는 어버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어쨌거나, 뒤섞이고 어울리는 민물과 바닷물 덕분에 하동 섬진강은 재첩이 이름나 있다. 재첩이라는 조개는 강 하구에만 산다는데, 낙동강의 하단 재첩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십 몇년 전과 달리 지금은 하동 재첩만이 홀로 우뚝하다.
송림에서 바라보는 재첩잡이 풍경은 조그만 점처럼 동동 떠 있는 게 무척 한가롭다. 작업하는 이들이야 고달프겠지만, 되풀이되는 노동에서 잠깐 벗어나 쉬러 나온 입장에서는 배와 사람 머리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게 아름다워 보이기조차 하다.
재첩잡이는 물의 빠짐과 함께 시작되나보다. 사람들은 모래를 치는 자그만 채와 호미와 커다란 대야를 들고 들어간다. 멀리서 보기로는 배도 서너 척 함께 뜨는데, 한복판까지 몸을 담그고 들어가서 작업하다가 물이 차오르면 강 따라 오르면서 조금씩 밖으로 나온다.

△가볼만한 곳 - 최참판댁·고소산성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로 너무 알려져 버렸다. 주인공 서희와 길상은 캐릭터 상품이 되어 나와 앉았고 없던 최참판댁이 주인이 되어 마을 윗목을 차지해 버렸다.
통영 출신인 박경리씨는 작품을 쓰기까지 한 번도 평사리에 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로지 상상에 기대어 배경 공간을 짜내었던 것인데, 하동군은 애당초 있지도 않은 최참판과 손녀 서희와 서희의 남편이 될 머슴 길상이를 위해 우람한 한옥을 지어올린 셈이다.
최참판댁에는 별로 보고 새길만한 게 없다. 군데군데 ‘공사중’ 표지판이 붙어 있어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다. 오죽 하면 사람들이 오르막길 땡볕에 지쳐 안채로 통하는 대문간에앉아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고들 한 마디씩 내뱉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들판과 섬진강은 눈이 부셔서 아릴 지경이다. 막 모내기를 끝낸 드넓은 논들. 꽉 들어찬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섬진강도 깨진 사금파리마냥 햇볕을 되쏘며 구비치는 언덕 너머로 자취를 감춘다.
오히려 여기서 느낄 것은 ‘소중화’를 자처한 양반들의 썩어빠진 사대주의를 아무런 비판 없이 갖다 쓰는 행정관청의 무사안일이 아닐까. 우리 명승고적을 자랑하면서도 중국에 빗대지 않고서는 할 줄 몰랐던 봉건 양반들의 찌들린 상상력이 여태 되풀이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고, 최참판댁 들머리 안내판에 이른바 평사낙안이니 동정추월이니 산시청람이니 하는 ‘소상팔경’을 번듯하게 새겼다. 이는 섬진강을 중국 소상강에 빗댄 것이고 소상팔경에 맞춰 평사리의 풍경을 재단한 것이다. 들판 가운데 조그만 연못 이름조차 중국 명승일 뿐인 ‘동정호’라고 해대는 줏대 없음이 아직 이어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평사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오른다. 길을 따라 가면 한산사가 나온다.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불화를 모신 절간이니까 역사도 꽤 오랜 모양인데, 여기를 거쳐 고소산성에 오르면 더욱 시원한 풍경을 가득 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발품을 좀더 팔 생각을 하면 일부러 지어올린 최참판댁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겠다.
길가에 전을 펴고 고사리나 여린 배추, 매실을 파는 할머니들이 정겹다. 농약 안친 물건이라면서 수북수북 얹어준다. 관광지라고 비싸게 값을 매기거나 때깔만 좋게 해서 내다 파는 것은 아닌 듯 싶다. 3000원이나 5000원 어치만 사도 꽤 풍성하다.

△찾아가는 길

하동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하동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려 국도 19호선에 올린 다음 바로 가면 된다.
10km 남짓 가면 하동 읍내가 나오고 광양 넘어가는 다리가 나오기 전에 송림공원이 나온다. 여기 솔밭은 아주 넓고 시원하기도 하지만 강가에 펼쳐진 모래밭이 좋아서 식구들끼리 놀러 나와 한 때를 보내기는 안성맞춤이다.
국도 19호선은 화개장터를 지나 전남 구례로 넘어간다. 장터까지 가기 전에 ‘가로변 휴식공원’이 나온다. 멋대가리 하나 없고 ‘관변’ 냄새가 풀물 나는 이름이긴 하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섬진강 풍경은 아주 산뜻하다. 아래로는 비늘 자랑하는 뱀처럼 강물이 햇볕 아래 느물느물 흘러가고 위쪽으로는 서늘한 바람을 머금은 산악들이 쭈뼛 솟아 있다.
여기 19번 국도는 쪽 곧게 뻗은 채 양쪽으로 벚나무의 호위를 받고 있다. 봄철에 이 곳을 거니노라면 아마 꽃멀미가 지독했을 법한데 도로가 끝나는 즈음에 오른쪽으로 최참판 댁이 있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마산·창원에서 버스를 타고 하동에 가려면 진주에서 갈아타야 한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까지는 5분마다 한 대씩 차편이 있고 진주서 하동까지는 아침 6시 40분부터 20분마다 나가니까 차편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자전거는 어디서 빌릴 수 있을까. 하동군에서는 양심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다. 읍내를 오가는 사람들이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자전거 30대를 장만해 내놓고 아무 조건 없이 누구나 탈 수 있게 했는데 그 사이 9대가 없어지거나 망가지고 21대만 남았단다. 잘못 하다가는 모조리 없어지겠다 싶어 지난달부터는 이름이나 주소 따위 인적사항을 적게 하고 빌려준다니까, 양심을 걸고 이 자전거를 빌려 타면 되겠다 싶다. 읍내에 있는 군청이나 하동읍사무소·하동문화예술복지회관에 가면 간단하게 얻어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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