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임대수익 포기하고 서점 확장…왜냐고요?
지난해 본점·분점 새단장
개점 30년 만에 대폭 변신
"책방 존재 가치 알아주는 직원·주민 위한 공간 돼야"

지난해 5월 진주를 대표하는 중형서점 진주문고가 완전히 새로 단장했다. 한결 널찍해지고 산뜻해진 공간을 보며 '손님으로서는 좋은 일인 건 분명한데 요즘같이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이거 좀 무모한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최근 이와 관련해 자세한 뒷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달 하순 김해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에서 열린 제4회 인문강의축제 중 진주문고 여태훈(56) 대표 강연을 통해서다.

"현실적으로 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상품으로 보고 팔려는 사람이 서점을 해야 업이 되고 생계가 됩니다."

▲ 여태훈(맨 왼쪽) 진주문고 대표가 지난달 24일 김해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서 30년 동안 진주문고를 운영해온 과정과 앞으로 30년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어릴 적 큰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좀 불편했던 여 대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서점을 시작했다. 그렇게 1986년 경상대 앞 작은 서점으로 시작해 지금의 진주문고를 일궈냈다. 자신의 말처럼 그는 책을 파는 사람이다. 냉정한 손익계산으로 살아왔을 터였다.

그런 그가 왜 무리를 하면서까지 서점을 새로 꾸몄을까.

"서점을 새로 고치지 않았다면 그 돈으로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 수도 있겠지요. 사실 그런 것에 대한 유혹도 아주 컸습니다. 하지만, 유혹을 떨쳐내고 리뉴얼(전면적으로 새로 꾸밈)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0년이 양적 팽창을 통한 성장에 무게 중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다른 시각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거든요. 앞으로는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서점을 같이하는 직원과 서점 가치를 알고 이용하는 지역민을 위한 서점이 돼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여 대표식으로 표현하면, 이는 '새로운 30년 프로젝트'라고 해야겠다. 개인 소유의 서점을 일종의 공공재로 탈바꿈하는 과정이겠다. 그렇게 2017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5월까지 평거동 본점 확장 리뉴얼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진주시 가좌동 MBC경남진주본부 건물 안에 있는 분점 리뉴얼도 마쳤다.

듣고 보니 단순한 확장 정도가 아니었다. 건물주로서 그가 포기한 것이 제법 많았다.

▲ 지난해 새롭게 단장한 진주문고에서 손님들이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모습. /이서후 기자
"본점에는 원래 1, 2층만 서점이었고, 나머지는 약국, 학원 등이 있었어요. 임대료 수익이 제법 많았죠. 서점을 확장하면서 모두 내보냈습니다. 애초에 서점 운영이 건물 임대 수익에 기댄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건물이 온전히 서점 공간이 된 거죠."

또 하나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서점 구성원 즉, 직원들의 행복이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고 어떻게 손님들이 행복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이는 서점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사실 힘든 일입니다. 진주문고는 5년 전에야 겨우 노동법이 정한 모든 조건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물론 법을 어긴 적은 없지만 옛날에는 돈을 빌려 직원 월급을 주기도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을 정도는 된 거죠. 이렇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만 30년이 걸리더라고요. 게다가 서점업은 3D 업종입니다. 월급도 많지 않고, 일은 고된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에요. 앞으로는 우리 직원들에게 안전한 직장, 오래가는 직장으로 의미가 있길 바라고 있어요."

여 대표가 서점을 새로 고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시대에 맞춰 책과 서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는 일이었다. 그가 강연에서 쓴 발표 자료 내용을 보자.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책의 집'인 서점은 그냥 무심히 있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할' 의미 있는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지역 시민의 두터운 교양을 책임지는 공간이고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이 소통하고 '공공적' 의미를 논하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한다."

▲ 진주문고 1층에 마련된 북카페. /이서후 기자
새로워진 진주문고가 이 생각을 실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1층 한쪽에 계단식으로 책을 볼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마련했다. 여기서 책만 보고 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책장을 포기하면서 손님들에게 내어준 공공 공간인 셈이다.

두 번째로 2층에 마련된 복합문화공간 여서재. 여기서는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아카데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린다. 강연 수준이 꽤 높다. 거의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보통 시간당 2만 원짜리 유료 강연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폐강된 것도 있지만 지역민들이 나름 호응을 해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요즘에는 아카데미보다 가볍고 대중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블리오세러피라고 약사가 증세에 맞게 약을 주듯이 고민에 맞는 도서를 추천하는 코너를 운영하는 일이다. 뜻밖에 많은 호응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33년, 진주 사람 치고 진주문고 한 번 안 다녀간 사람은 없다고 여겨질 정도의 긴 세월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추억이 진주문고에 담겼다. 진주에서 자라 타지에 정착해 사는 이들에게는 '그때 그 서점'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는 자체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서울 등에서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는 이들이 제법 많은 이유다. 이런 추억 역시 진주문고의 큰 에너지원이다. 진주문고는 이렇게 존재 자체로 큰 위로가 되는 서점으로, 앞으로의 30년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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