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지 도착! 근데 이제 오토바이는 어쩌지
120m 깊이 협곡 이어주는 론다 누에보 다리 '장관'
관광 마친 후 짐을 부치러 다시 발렌시아를 찾지만…

프랑스 툴롱에서 씨몽·보리 씨와 헤어진 후, 우리는 바로 스페인으로 향했다. 도로가 좋아서 반나절 만에 스페인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은 따로 국경 검문소가 없기 때문에 별다른 절차 없이 통과해 아주 편했다. 국경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니 '피게레스'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바르셀로나까지가 카탈루냐 지방이다.

"지훈아 어째 여기 분위기가 좀 살벌하네?"

"아빠 그렇네요. 사람들 표정이 비장하게 느껴지는데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쯤 카탈루냐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서니 건물 베란다 곳곳에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국기가 걸렸다. 마을 광장에는 국기를 망토처럼 몸에 두른 젊은 사람들이 걸어 다녔고, 도로에 줄지어 선 트랙터들은 경적을 울리며 독립을 염원했다. 아주 평화적인 행진이었고, 경찰이 막아서는 폭력적인 광경은 전혀 연출되지 않았다. 이방인인 나와 지훈이의 눈에는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 여행의 종착지 론다에서 누에보 다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최정환 시민기자

◇여행의 끝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도로는 자동차가 꼬리를 물었고 유명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붐볐다. '구엘공원', '사그리다 파밀리아성당'. '몬주익 언덕' 등 몇 군데를 찾아가 관광을 하긴 했지만 여행이 슬슬 끝나가서 그런지 설레거나 가슴속에 크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지훈아 여행이 별로 재미가 없지?"

"예? 아니에요. 재밌어요."

"네 표정을 보니 다 나타나는데 사실대로 말해봐."

"아빠 사실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별로 흥이 안나요."

"아빠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빠가 어떤 글을 읽었는데, 시간을 정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여행한 사람들은 언제쯤 여행이 끝날지를 스스로가 안대."

"우리가 그때일까요?"

"그럼 스페인 관광은 다음에 와서 보는 걸로 하고 대신 아빠랑 휴양지에 왔다 생각하고 바닷가에서 신나게 놀까?"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되고 말고 여행을 아빠 혼자 하냐? 대신에 여기까지는 아빠가 숙소를 예약하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지훈이가 숙소나 캠핑장 예약도 하고 식당도 찾아봐."

"진짜요? 그럼 이제부터 제가 아빠를 모시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모든 여행을 준비했는데 지금부터는 지훈이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지훈이는 미리 내가 알려준 숙소예약사이트를 검색하더니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Ji Hoon Choi 최지훈'으로 인쇄가 된 종이가 안내 데스크에 놓여 있었다.

스페인 남부 지방을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무르시아 말라가 아름다운 해변 도시를 지나오는 동안 지훈이와 나는 느긋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변에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누에보 다리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도시 '론다'에 가까워졌다. 원래는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 '로카곳(cabo da roca)'까지 갔다가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오려 했는데 학교 수업일수가 모자랄 수 있다는 학교선생님의 긴급연락이 와서 '론다'에서 여행을 마치기로 했다. 1년 수업일수 중 최소 3분의 2를 출석해야 다음 학년으로 진학이 되는데 자칫 한국에 늦게 도착하면 5학년을 다시 해야 되는, 지훈이에게는 아찔한 일이 생기기에 귀국 일정을 조정해야만 했다.

'론다', 이곳에는 120m 깊이의 이 협곡을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가 유명하다. 몇 해 전 TV프로그램을 통해 '담다디'를 부른 가수 이상은 씨가 이 다리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 저곳에 꼭 가봐야지' 하고 상상을 했었다.

이상은 가수는 '담다디'를 불러 유명하지만 원래 그림을 잘 그려 미술대학을 가려다 진로를 바꿔 음악을 하게 된 아티스트다. 제일 잘나가던 시절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데 나는 그게 참 멋져 보였다. 지훈이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여기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본 누에보 다리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다리 위로는 차가 지나가고,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좁은 골목엔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ㅋ

▲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최정환 시민기자

◇복병

론다 관광을 마친 우리는 대장정의 유라시아 횡단을 종료하기 위해 다시 발렌시아를 찾았다. 120일 동안 함께한 오토바이를 컨테이너에 실어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오토바이를 한국으로 보내는 걸 쉽게 설명하자면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삿짐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컨테이너에 우리 오토바이와 다른 사람들 짐까지 다 같이 실어서 컨테이너 배로 운송하는데 한국에 도착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한 달 정도 걸린다.

원래는 여행하기 전 한국에 있을 때 알아둔 운송업체가 바르셀로나에 있어서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스페인에 오기 전 바르셀로나에 먼저 도착해 한국으로 오토바이를 보내려 했던 분이 그 선박 운송 업체에서는 더 이상 한국으로 가는 화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스페인에서 안 된다면 독일 함부르크로 다시 올라가야 하나? 아니면 스페인에다 오토바이를 보관하고 내년 봄에 여기로 와서 육로로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갈까?'

여행 막바지에 나타난 골치 아픈 복병에 고민이 깊어만 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