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캐낸 신선한 맛 시금치 매력 속 풍덩
참가자들 농장서 갓 수확
즉석 샐러드·수프 요리로
작물 가격폭락해 행사 기획
농부·지역농산물 가치 공유

보도자료를 받고 재미난 기획이라 생각했다.

'지역농산물을 직접 수확해서 요리하고, 먹고, 이야기하며 즐기는 '촌스럽고도 힙한' 브런치 행사가 창원에서 열린다.'

▲ 비닐하우스서 먹는 시금치 브런치. /김민지 기자
이 행사를 주최한 이들은 창원의 문화기획연구모임 '창원컬처랩'. 이들의 기획 의도는 농장에서 갓 수확한 음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로컬푸드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거였다.

장소는 김성은 농부의 시금치 비닐하우스.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먹는 브런치(아침 겸 점심)라…. 완전 이색적이겠는데. 단순한 호기심에 지난 1일 오전 11시 그곳을 찾았다.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 비닐하우스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푸릇푸릇 시금치가 사람들을 반겼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30명 정도 모였다.

김성은(29) 농부가 마이크를 잡더니 시금치 캐는 법을 알려준다. "칼로 시금치 밑동을 캐면 쏘옥 나옵니더~." 간단했다.

▲ 창원컬처랩이 주최한 로컬푸드 프로젝트 팝업식당 '비닐하우스 브런치, 시금치' 참가자들 모습. /김민지 기자
참가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금치 캐는 게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방 '하하호호'다. 아빠·엄마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도 곧잘 따라한다.

땅속 보물을 찾은 것처럼 "심봤다"를 외친 사람도 있다. 사진도 찍는다.

사회자가 "시금치 다 캐신 분들은 비닐하우스 밖으로 오세요"라고 한다.

이번에는 시금치를 씻는 시간. 칼로 뿌리를 자르고 한 번 그리고 두 번 시금치를 물에 살살살 흔들며 씻는다. 참가자가 "여보가 칼 든 모습 오랜만이네~"라고 말하자 주위 사람들이 까르르 웃는다. 마지막엔 약수로 시금치 헹궈 주기. 채소 탈수기로 시금치 물기를 제거하고 흰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브런치 메뉴는 시금치 샐러드와 시금치 수프, 건강 발효빵, 딸기 우유다.

창원시 용호동 니은레스토랑 이창욱 셰프가 샐러드 재료를 준비하고 시금치 수프를 만들었다. 건강 발효빵은 진해 아크베이커리 주인장 이상기 씨가, 딸기 우유는 창원 베스트 루이스해밀턴 호텔 셰프 김보경 씨가 준비했다.

참가자들은 시금치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토핑을 뿌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 시금치 수프. /김민지 기자
양상추, 토마토, 계란, 베이컨, 크루통을 올리고 소스를 뿌리면 신선함이 가득 담긴 시금치 샐러드가 완성됐다. 여기에 건강 발효빵과 치즈, 시금치 수프와 딸기 우유까지…. 호텔 조식 부럽지 않았다.

시금치는 흔히 데쳐서 나물로 먹는 데 '생'으로 먹으면 어떨까 궁금했다. 사각사각 씹으면 씹을수록 달달한 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다른 채소와 토핑과도 잘 어우러졌다.

시금치 수프는 고소하면서 뒷맛이 깔끔했다. 수프에 빵을 푹 찍어서 먹으니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동읍 딸기로 만든 딸기 우유도 달달함과 상큼함의 조화가 좋았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갓 캔 시금치를 먹으니 신선함은 물론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함이 느껴졌다.

김 농부가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참가자들 한목소리로) "네."

김 농부는 "다들 웃고 계시지만 사실 저에게는 슬픈 자리입니다. 여기 있는 시금치들은 내일모레 갈아엎어야 해요. 인건비가 안 나올 정도로 가격이 폭락해 수확하면 오히려 손해거든요. 고빈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럼 사람들과 시금치를 직접 기른 농부의 이야기, 로컬푸드의 의미를 함께 나누어보자고 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수확에 필요한 장비. /김민지 기자
자연스레 이 행사를 기획한 '창원컬처랩' 사람들이 나왔다.

손고빈(38) 씨는 "우리 지역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자는 의미로 이 자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시금치 밭에서 직접 시금치를 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시금치는 갈아엎어져야 할까?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방법은 없을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고 농부의 생산가치가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정보경 감독은 "마트에서 사오는 시금치 한 단이 오늘은 아주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졌습니다. 시금치를 직접 캐고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서 지역을 살리려면 지역농부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이후 참가자들은 자신이 먹을 만큼만 시금치를 더 수확해갔다.

가족들과 함께 온 박진우(39) 씨는 "(농가의 어려움을)뉴스에서만 접하다가 이렇게 직접 농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놀랐습니다"면서 "시금치를 생으로 먹어본 건 처음인데 혀에서 거친 질감이 느껴지면서 끝 맛이 달아 좋았습니다"라고 말했다.

▲ 시금치를 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 /김민지 기자
밀양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권수영(25) 씨는 "남 일 같지가 않네요"라며 "농사를 짓다 보면 가격 폭락으로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농산물이 많아요. 농부가 기른 농산물로 직접 음식을 만들고 로컬푸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딸기 우유를 만들었던 김보경(38) 씨는 "호텔 셰프로서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싶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로컬푸드 유통 통로가 활성화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호기심에 참여했던 행사였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지역 농부가 살고 로컬푸드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음을 던져주는 행사였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식문화 트렌드다.

팜 투 테이블은 히피의 유산이다. 1960년대 히피들은 도시를 떠나 농촌 공동체를 형성하고 친환경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미국에는 현지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해 메뉴를 구성하는 레스토랑이 있으며 한국도 팜 투 테이블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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