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총소리 나더니 아침밥 때 표범을 지고 내려오데"

'표범' 하면 우리나라와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특히 30대 이하 젊은 세대는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정도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표범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경남에. 특히 야생 표범이 마지막으로 잡혀 죽은 데가 바로 경남이다. 4일은 그로부터 딱 49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숨을 거둔 최후의 한국 표범을 기리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았다.

▲ 이달출 씨

그러고는 49년이 지난 지금까지 표범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경남에서는 물론 전국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드문드문 표범으로 짐작되는 동물이 출현했다는 얘기가 나오고는 했으나 이렇다 저렇다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야생에서 마지막 표범이 잡힌 현장인 함안군 여항면 내곡마을을 지난 2일 찾았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이달출(74)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달출 씨는 설욱종 씨가 명포수라고 기억했다. "노루 두 마리가 이쪽에서 도랑을 건너 저쪽으로 뛰어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것을 단 두 방으로 맞혀 쓰러뜨리더라고. 그러니 표범을 한 방에 잡았다는 얘기를 나는 믿지." 엽총은 산탄이라 방향만 맞으면 된다.

얘기는 이어진다. "설 포수 일행은 해마다 겨울에 한 차례씩은 왔지. 와서는 마을에 집을 정해 밥을 대어 먹으면서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머물면서 고라니나 노루 사냥을 했어요. 우리는 '사장들'이 왔다고 했어요. 당시는 대부분 홀쭉했는데 달리 배가 나오고 뚱뚱하면 사장이라고들 했어. 그런 사람들이 지프를 타고 왔어. 설 포수는 사장들한테 고용된 사람이었어. 요즘은 노루나 고라니 누가 쳐 주나? 그때는 달랐어. 바로 현장에서 목에다 빨대를 꽂고 채 식지 않은 피를 빨아마셨어요. 그렇게 하면 정력에 좋다면서 말이지."

말하자면 총 잘 쏘는 포수 한 명을 데리고 경남에서도 오지라 할 수 있는 이 마을에 겨울 한 철 들어와 며칠 지내며 사냥을 하고 싱싱한 동물을 잡아 피를 마시곤 했던 것이다.

사냥은 포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마을의 젊고 어리면서 빠릿빠릿한 친구를 몰이꾼으로 썼다. 포수와 사장들은 위에서 목을 지켰고 몰이꾼들은 밑에서 올라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곡가는 헐하고 돈은 귀한데 일할 데도 없었거든. 몰이꾼을 하면 일당을 주는 거라. 쌀 두 되 값을 하루에 쳐줬고 짐승을 잡기라도 하는 날은 배로 주기도 했거든."

"그런데 그날은 몰이꾼을 쓰지 않았어. 새벽에 산에 올라간 거라. 보통은 아침에 몰이꾼하고 같이 가는데. 새벽에 총 소리가 나데. 아침 밥 때 산에서 표범을 어깨에 지고 내려오는 거라. 직접 잡는 거는 못 봤지."

이달출 씨는 표범이 잡힌 자리를 가리켜 주었다. 내곡마을로 들어오면서 왼쪽으로 보면 두 번째 뻗어나오는 산줄기였다. 그 중턱 조금 위에쯤 되는 데 범굴이 있는데 거기라 했다.

▲ 집 앞에 나와 표범이 잡힌 자리를 일러주는 이달출 씨. /김훤주 기자

'범'과 '굴'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 두셋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정도인데 옛날부터 범이 거기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일컬어졌다는 말까지 들었다. 마을 출신 가운데 표범을 본 사람은 없었다.

지고 내려오는 표범을 보았을 뿐이다. 이달출 씨는 거적으로 덮어놓은 표범한테로 다가가 수염을 두 가닥 뽑았다. 흰색이었고 긴 것은 어른 한 뼘 정도 되었다고 했다. 기념으로 삼으려고 생각했다.

"몰래 했지. 알려졌으면 뽑을 수나 있었을까? 몰이를 할 때 노루·고라니가 다른 데로 달아나기만 해도 쌍욕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런데 개를 만지면 털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하잖아? 하지만 표범은 그렇지 않고 까칠하더라고."

표범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당일 아침에 설 포수와 사장들이 타고 온 차에다 표범을 싣고 그대로 부산으로 갔기 때문이다. 아마 경향신문과 경남매일의 처음 기사가 모두 '부산'발로 나왔는데 그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표범이 한 쌍이었고 살아남은 한 마리가 복수할지 모르니 나머지 한 마리도 잡아야 한다는 소문이 당시 퍼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곡마을 사람들은 해가 지면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바깥에서 만들어진 소문이었다. 이달출 씨는 그런 얘기를 당시는 듣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다만 그해 가을 이달출 씨한테로 산인면 문암 마을에서 시집온 두 살 아래 아내는 그런 소문을 친정에서 일찍이 들었다고 했다.

49년 전 경남에서 마지막 표범이 사람에게 잡혀 죽은 전후 사정을 이달출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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