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사가 만들고 널리 불리는 노래
제대로 청산하고 우리 정서 담아내자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밀정 염석진은 "광복이 될 줄 몰랐다. 광복이 될 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느냐?"고 했다. 또 지금 상영 중인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은 죽어가는 순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그럼 누가 합니까?"

일제강점기 염석진 같은 사람도 있었고 유관순 같은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염석진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면 지금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 영토든가 식민지든가 할 것이다. 그나마 유관순 같은 사람이 목숨 걸고 항거했기에 대한민국 백성으로 떳떳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3·1만세 100년 광복 74년 오늘의 우리 자화상은 어떤가.

우리의 것을 되찾겠다고 목숨 바친 열사들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고 친일로 배를 채웠던 앞잡이들은 또 어디에 서 있었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역사는 왜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강점기 시절 몸에 억지로 심어진 친일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소견이지만, 염석진 같은 친일부역자들이 광복 후에도 권력과 부를 유지한 채 떵떵거리며 사는 환경이 조성된 탓이라 본다. 친일파를 그대로 기용한 이승만 정권, 게다가 일본제국 장교 출신 박정희 정권, 군사독재 연장선의 전두환 정권. 이들은 친일파와 후손들이 권력의 기술과 경제력을 거머쥔 상황에서 친일을 청산하기보다 활용하는 쪽으로 나름 묘수(?)를 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친일파 에키타이 안(안익태)이 작곡한 애국가를 밤낮으로 부르며 황국신민으로서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지원병 장행가'를 지어 일왕에 충성을 다하자던 친일파들이 만든 교가들이 여전히 학교에서 불리고 있는 현실.

거리에서 지나가는 학생을 대상으로 마이크를 들이대며 "애국가 작곡자가 누군지 알아요?" 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안익태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몇 있지만, 그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고파' 김동진, '희망의 나라로' 현제명, '고향의 봄' 홍난파, '산유화' 김성태, '섬집아기' 이흥렬 등등. 이들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싶다. 지금 이들의 노래가 국민 뼛속까지 스며 자연스레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진작에 청산이 이루어졌어도 그랬을까. 그놈이 내 자식을 부추겨 일왕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도록 한 사실을 아는데, 그가 지은 노래를 흥겨이 부른다?

솔직히 광복 직후 제대로 친일 잔재가 청산되었다면 오히려 우리의 정서를 제대로 담은 더 좋은 노래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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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불기 시작한 친일부역자가 만든 교가 바꾸기 바람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경남에도 적지 않은 교가가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2016년 8월 마산무학여고 서영수 선생이 경남도민일보 '발언대' 기고를 통해 '친일인사가 만든 교가, 이대로 내버려둬야 하나?' 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밖에 수많은 친일 DNA. 언제까지 계속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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