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록·자긍심 고취 순기능
비리 저지른 인물들도 버젓이

며칠 전 물레방아 골로 알려진 함양의 상림 숲을 둘러봤다. 상림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로 있으면서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이다. '천년의 숲'으로 알려져 있고 천연기념물 154호다. 상림공원 함화루·사운정·초선정·화수정 등 정자와 최치원 신도비·만세기념비·척화비·역대군수·현감선정비군 등의 비석, 이은리 석불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논쟁이 되는 것이 역대군수, 현감 선정비군 중 조선 말기 온갖 방법으로 백성을 착취하여 이 시기 탐관오리의 대표적인 인물로 갑오 동학 농민운동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로 평가되는 고부군수 조병갑이 함양군수로 재임했던 1886년 4월에서 1887년 6월까지의 선행을 기린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가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조선말 조병갑 군수는 유민을 편케 하고 봉급을 털어 관청을 고치고 세금을 감해 주며 마음이 곧고 정사에 엄했기에 선정을 기리기 위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비를 놓고 함양군에서는 지역민들이 철거를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선정비는 존치하되 역사적 잘못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키로 합의하여 보존하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교육청(학교)·법원·검찰청 등 대부분의 기관 단체에서는 역사기록과 '존경'의 차원이거나 일제나 군사문화의 권위주의 상징으로 대강당 아니면 소강당에 역대 기관 단체장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역대 기관단체장 사진 게시의 법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관행적으로 자신들의 지역이나 조직 역사를 보여주는 현시적인 방법으로 사진을 걸어두는 것이 당시 내력을 더 잘 알려줄 수 있고 역대 기관 단체장의 업적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게시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기록과 전임 기관장들의 치적을 게시함으로써 조직의 자긍심을 높이고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차원에서는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이 중에는 부끄럽거나 영광스럽지 못한 이들도 다수 있는데, 어떤 기관에는 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을 산 기관장의 사진도 게시되어 있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 중 부정부패나 뇌물수수와 관련되어 선고가 확정되어 징역을 받은 단체장들의 사진도 한둘 아니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일제강점기 기관장 사진과 학교의 일제 강점기 교장 사진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의 기관장들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수탈에 앞장서 온 행정 책임자들이고 교장은 식민지 정당성 주입을 위한 교육에 앞장서 왔던 자들이다. 이런 기관단체장의 사진이 지역민이나 소속 직원들에게 공감이나 존경심이 들겠는가. 오히려 부끄럽고 자존감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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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구와 경남지방경찰청에서는 2018년 조직문화 개선의 한 방법으로 지방경찰청 내 역대 청장 사진과 경찰서의 역대 서장사진을 떼어낸 바 있다. 또 새로 태어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서는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노태우·김재규 등 역대 보안사령관의 사진을 내걸지 않기로 한 것도 그런 연유이다. 그렇다면 게시하는 방법을 다르게 하여 개선할 수는 없는가. 사진 게시·철거 규정을 확실하게 하든지, 아니면 역대 기관 단체장 중 비리와 관련되어 형이 확정된 자는 사진을 철거하여 보관하거나 함양군처럼 별도의 안내표시를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지방경찰청과 같이 사진은 철거하고 대신 연표를 걸어 두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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