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자산을 안전하지 지키는 것이 은행원의 역할”

1월 16일 농협 합천군지부, 70대의 한 고객이 예금, 적금을 해지하러 찾았다.

예금, 적금에 가입한 지 4개월, 1개월밖에 안 된 상황.

해지 사유를 물으니 자세한 사정은 밝히지 않고 ‘목이 탄다’, ‘안 좋은 일이 있다’며 해지해 달라고 한다.

휴대전화를 들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예금과 적금을 해지하려는 상황.

‘정말 괜찮으시냐’,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도와드리겠다’, ‘요즘은 보이스피싱 같은 것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더니,

고객이 휴대전화 너머에 ‘은행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의심에서 확신이 됐다.

매뉴얼에 따라 고객을 안심시키고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경찰에게 협조를 구했다.

2주 차 은행원의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 그 주인공인 이이(32) 씨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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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 농협 합천군지부 계장. /이종현 기자

취업한 지 얼마 안 된 지인에게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는 연락이 왔다. 농협 합천군지부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이이 씨 이야기다. 전후 사정을 들어 보니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었다. 대학 때 지인이라는 ‘학연’을 이용해 섭외했다.

“안녕하세요, 농협 합천군지부에서 근무 중인 이이입니다. 감사장도 받고. 인터뷰도 하고 하니까 좀 쑥스럽네요.”

이이 씨를 알게 된 건 진주 경상대학교에서부터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정보도 많이 알고 있는 상태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래 대구가 고향이라거나 군 전역 후 재입학으로 경상대에 들어간 것이라는 등. 막연히 알고 있는 정보의 확인부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등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물어봤다.

“고향은 대구가 맞습니다. 초·중·고를 대구에서 다녔어요. 경상대는 두 번째 대학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가톨릭대학에 갔었는데. 군에 다녀온 후 학교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경상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 입학자가 그러하듯, 처음부터 경상대학교를 목표로 한 건 아니다. “성적에 맞춰서 여러 대학에 지원했고 개중 국립대학인 경상대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도시공학과라는 학과 역시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보다는 공대가 취직이 잘 될 것 같아 선택했다고.

“저는 원래 인문계였습니다. 그런데 인문계 취업이 좀 어려워야죠. 제가 대단한 인문학적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두 번째 대학을 선택할 때는 비교적 취업이 잘 되는 공대로 진학했습니다.”

농협과의 인연

이이 씨의 첫 직장은 농협이 아니다. 이전에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물었다.

“첫 직장은 진주에 있는 목재 회사입니다. 건축 및 인테리어 제작에 필요한 목재를 수입해와 가공하는 일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1년 조금 안 되게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본가 일을 도왔어요. 아버지가 축산농가를 운영하시는데. 업무강도나 급여가 농가 일을 돕는 게 훨씬 나았거든요.”

이이 씨는 농장 일을 돕다가 두 번째 직장으로 선택한 게 지역농협이다. 다만 그 취업 이유가 꽤나 로맨틱하다.

“두 번째 직장은 합천에 있는 지역농협이었습니다. 구직 동기는… 사실 회사를 꼭 다녀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집안에서 하는 축산농가 규모가 꽤 돼요. 취업을 하더라도 농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을 거란 보장도 없고, 또 늦은 나이에 다시 취직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죠. 그럼에도 지역농협에 입사한 건,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아내와 결혼 전 교재 중일 때는 집안의 농가 일을 돕고 있었는데. ‘부모님 일을 돕는다’는 게 조금 그랬어요. 벌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가정을 책임질 자신도 있었지만. 장인어른께 더 당당한, 안심시킬 수 있는 사위가 되기 위해 농협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마침 아내가 농협에서 일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고요.”

아버지가 축산농가를 운영하다 보니 농협과의 접점이 많았다. 게다가 아내도 농협 직원이었기 때문에 농협은 여러모로 이이 씨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 지역농협도 그만두게 됐다.

“지역농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물렀어요. 저는 농협 업무를 ‘은행’이라고 생각하고 입사했거든요. 하지만 지역농협에서 한 건 금융업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금융 업무인 신용사업은 비중이 적었어요. 벼, 양파, 마늘, 딸기 등의 농산물 수확을 돕고 사들이는 수매나 하나로마트 등에 납품할 농산물을 가공·선별하는 작업 등의 경제사업이 주요 업무였습니다. 업무강도도 무척 높은 편이었고요. 야근과 주말 출근이 기본이었으니. 결혼하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계속 일하려 했지만. 결국 1년 6개월 정도 근무하고 그만두게 됐습니다.”

지역농협을 그만둔 뒤 이이 씨는 다시 ‘취준생’이 됐다. 지인으로서 평가하자면, 공부 머리가 되고, 집안이 구직활동을 도울 정도의 여력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주택공사(LH) 업무직에 붙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곧이어 농협 합격 소식까지. 어떻게 준비한 걸까.

“NSC(National Competency Standards·국가 핵심 직무능력 표준),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채가 뜨는 곳에 이력서를 넣어봤는데. 나름 시험을 잘 봐서 LH 업무직에 붙었어요. 그런데 같이 시험을 치른 농협도 합격했습니다. LH도 좋은 직장이지만, 농협에서 금융 업무를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농협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지난해 11월 19일에 연수원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7주 교육받은 뒤 올해 1월 7일에 농협 합천군지부에 발령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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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경찰서로부터 받은 보이스피싱 방지 감사장. /이이 씨.

합천군지부 발령과 보이스피싱 방지

이이 씨는 합천군지부에서 근무하면서 원하던 금융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맡고 있는 일은 ‘출납’이라고 한다.

“은행 내 업무는 크게 대부계와 수신계로 나뉩니다. 대부계는 대출을 전담하는 부서죠. 그 밑으로 정책대부계·일반대부계로 나뉩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대부계는 국가 지원을 받는 대부업무를 담당하고 일반대부계는 일반 대부업무를 담당합니다. 그리고 수신계는 출납, 예금, 카드, 외환, 보험, 펀드, 신탁 등, 은행에서 하는 업무 대부분을 담당합니다. 제가 맡은 출납은 지점의 돈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금고에서 필요한 돈을 내주는, 일종의 금고지기라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은행원의 퇴근은 6시 이후. 하지만 일반인들이 아는 은행은 4시까지다. 업무 이후 내려진 셔터 뒤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고객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7시간 동안 은행 창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은행을 내점하시는 분들이 볼 수 있는 일상 풍경이죠. 그리고 4시부터 6시까지는, 7시간 동안 이뤄졌던 업무를 정산하는 일을 합니다. 금융업은 큰돈이 오가지만 1원 단위까지 정확해야 하는 일이에요. 이걸 살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가령 외화, 외국 화폐 업무의 경우. 전산에 있는 외화 보유량과 실제 보유량이 맞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해요.”

1월 7일 발령, 그리고 1월 16일 보이스피싱 방지. 주말 포함해서 발령받은 지 10일 만이다.

“은행 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꽤 있으신 고객 한 분이 오셔서, 예금이랑 적금을 해지하려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액수도 적지 않았고, 예금 든 지 4개월, 적금 든 지 1개월밖에 안 됐었습니다. 일단 매뉴얼대로 해지 사유를 여쭸는데,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렇다, 목이 탄다”고만 하시고 자세히 말씀을 안 하려 하시더군요. 보통 예금, 적금을 들고 단기간 내 해지하는 것도 드물고. 또 보통은 해지 사유도 두루뭉술하게나마 설명해 주시는 편인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캐묻거나 하는 건 고객께 실례되는 일이다 싶어 절차 안내해 드렸어요. 근데 예금, 적금 해지는 본인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오실 때 신분증을 안 챙겨 오셔서, 신분증 가지고 다시 오시겠다고 하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방문하셨을 때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오셨더라고요. 제 앞에서 통화는 안 하시는데. 계속 불안해 보이시고, 휴대전화도 연결돼 있는 듯하고. 그래서 절차 진행하며 고객께 다시 해지 사유 여쭙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드리겠다고, 요즘 보이스피싱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말을 들은 고객이 전화로 ‘은행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한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확신했죠. 보이스피싱이라고. 우선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고객이랑은 계속 얘기 나누면서 안심시켜 드렸어요. 경찰께도 협조를 구해서 보이스피싱인 걸 확정했고. 좋게 끝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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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 보이스피싱 방지 캠페인 안내문. /농협 경남지역본부

농협 이념 ‘협동과 혁신’

발령 10일 만에, 여러 창구 중 이이 씨에게, 절묘했다. 사건 이후 1월 22일 합천경찰서로부터 감사장도 받았다. 이이 씨가 22일 받은 감사장. 어떤 기분이었을까.

“뿌듯하죠.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단순히 돈을 만지는 직업이 아니라 고객의 자산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신참이라 다른 선배에 비해 업무 처리가 느리지만. 느리더라도 더 꼼꼼히 하려는 노력 덕분에 보이스피싱을 방지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이 씨는 “제가 주의 깊게 살피려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사전에 보이스피싱 방지 교육을 받은 덕분”이라고 한다. 발령 전 연수원에서 7주간의 교육 중 보이스피싱 방지 교육도 있었다는 것.

“신규교육 과정에서 여러 보이스피싱 사례를 듣기도 했고, 금융피해 예방법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합천군지부에 와서도 보이스피싱 방지 업무 매뉴얼이 있고요. 농협 본사 차원에서도 보이스피싱 대응팀을 따로 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객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당하는 농협’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너무 PPL 같나요? (웃음)”

마침 은행 이야기가 나온 만큼, 타 은행에 비해 농협의 장점은 어떤 게 있을지도 물어봤다.

“제가 축산농가를 하는 집에서 태어나선지, 어려서부터 농협이 익숙했어요. 가까이서 농협이 사회에 공헌하는 걸 많이 봤죠. 애당초 농민들의 힘을 모아 만든 조직이잖아요. 협력, 상생. 이런 게 타 은행에 비해 강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에요.”

최근에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의 인터넷 전문은행도 출범했다. 만만찮은 경쟁사의 등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비대면 은행이다 보니 청소년이나 젊은 층에게는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큰 금액을 예금하려면, 통장이라도 있어야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동시에 쉽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다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농협 같은 기존 은행들은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 은행에 배울 게 많죠. 은행 앱의 편의성을 개선하고, 또 ‘모임통장’ 같은 것도 만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인터넷 전문 은행의 등장 덕분에 더 나은 농협이 되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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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경찰서로부터 보이스피싱 방지 감사장을 받는 이이 씨. /경남도민일보 DB

“부끄럽지 않은 은행원이 될 것”

청년 고용 사정이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다. 통계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노량진 등 고시촌에 머물며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농협, LH, 농협에 합격한 이이 씨는 ‘우수한 구직자’다. 구직하고 있는 취준생들에게, 청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제가 남한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잘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공기업이나 농협, 기타 금융업계로의 취직을 희망했기 때문에 NSC와 인적성 시험을 많이 준비했어요. 이런 시험은 시험 유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꾸준히 준비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저는 청년들이 각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아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걸 잘하는지 파악해야죠.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아이들의 꿈이나 개성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걸 우선시하는 부모가 많아요. 좋은 대학부터 의사, 교수, 변호사 이런 ‘사’ 자 들어가는 직업들. 그렇게 다그친다고 해서 모두가 의사, 변호사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구성해주는 게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다고 무조건 공부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공부하는 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거니까요.”

이이 씨는 지난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책임감을 갖고 심기일전하겠다고 한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지역농협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퇴사했고요. 잦은 야근, 주말출근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었거든요. 아내와 보낼 시간도 적었고. 그런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게 또 농협이었습니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인데. 저를 위해서, 또 가족을 위해서라도 자리 잡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보이스피싱 방지로 출발은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하죠. 우수한 금융전문가가 돼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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