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먹을까? 음식점 찾아 나선 배고픈 사람들의 공통 고민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내리는 결론 대부분은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아니면 회나 생선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해 평균 고기 소비량은 어림잡아 닭 8억 마리, 돼지 1,500만 마리, 소 75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런데 그 많은 닭, 돼지, 소들은 어디에서 길러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일까?

특히나 올해는 황금돼지해다. 그래서 더욱 돼지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금부터 돼지 탐구에 나서본다. 돼지는 소목 멧돼짓과에 속하는 가축이다. 전 세계에 약 1,000여 종류의 품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는 한자로는 저, 시, 돈, 체, 해 등으로 적고 돝·도야지로도 불린다.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은 돼지 섬의 옛말이다. 돼지가 가축화된 시기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4,800년 전에서 3,500년 전이다. 돼지는 다른 소나 말, 양 같은 동물에 비해 약간 늦은 시기에 가축화되었다. 소의 새끼는 송아지, 말의 새끼는 망아지로 부르는데 돼지 새끼는 ‘도야지’로 불렀다. 도야지란 말이 축약되어 돼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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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개량 돼지가 들어온 시기는 1903년으로 알려져 있다. 버크셔·요크셔·햄프셔 같은 종들이다. 버크셔종은 털 색깔이 검고, 다리 끝, 이마, 꼬리 등에 흰 점이 있다.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새끼를 잘 낳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흑돼지 즉 검은 돼지가 바로 버크셔종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요크셔종은 털이 흰 돼지다. 버크셔와 요크셔는 영국에서 강제 이민 온 돼지들이다. 돼지고기는 보통 굽거나 삶아서 수육으로 먹는다. 가공해서 먹으면 햄·소시지·베이컨이 된다. 기름은 화장품이나 비누를 만들 때 쓰고, 뼈로는 아교를 만든다. 가죽으로는 가방이나 구두를 만들고, 털은 붓과 솔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가만 보면 돼지만큼 쓸모 있는 가축도 드물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몸으로 제공해 주는 고마운 동물이다. 또 꿈속에 나타나면 복과 재물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처럼 ‘공장식 축산’이 성행하기 전에는 가정집에서 돼지를 길렀다. 특히 혼인을 앞둔 처녀 총각 집에는 거의 대부분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돼지가 있었다. 본채에서 조금 떨어진 ‘변소’ 옆이 돼지우리가 있는 곳이었다. 돼지를 키우면서 신기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돼지는 생각보다 깨끗한 동물이다. 우선 잠자는 곳과 똥 누는 곳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잠자는 곳에는 지푸라기를 끌어다 이불처럼 쌓아놓는다. 배가 고프면 꿀꿀대는 소리를 더 크게 내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이를 먹진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풀을 뜯어다 주면 맛있게 잘 먹었다.

돼지는 1년에 두 번 새끼를 낳는다. 임신 기간은 114일가량인데 한 배에 일곱 마리에서 열세 마리까지 낳는다. 그래서 다산의 상징이 된 것이다. 먹이는 아무거나 잘 먹는데 주로 쌀겨·보릿겨·밀기울·비지·부엌에서 나온 음식물 따위를 좋아한다. 아주 옛날에는 도토리를 먹여 키웠다고 한다. 물도 충분히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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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돼지.

돼지는 유럽 중·남부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에서 야생하는 유럽산 멧돼지, 중국 북동부, 동남아시아 멧돼지 등이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000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부여조에 보이는 마가·우가·저가·구가란 관직 명칭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논농사와 밭농사 모두 많은 양의 거름이 필요했는데 돼지를 키움으로써 거름 문제를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봄에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 집안 잔치에도 반드시 돼지고기를 내놓았다. 마을 동제나 기우제 지낼 때도 빠져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제물 중 하나였다. 돼지를 키우는 방법은 지방마다, 동네마다 다양했는데 가장 전형적인 돼지우리는 소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키우는 것이다. 토굴을 파고 목책을 두르는 방법도 있었고, 남부지방의 산간이나 제주도에서는 경사진 땅에 이 층 목책을 만들어 위에는 ‘변소’, 아래는 돼지우리로 이용하기도 했다. 함양, 산청, 거창에 가면 지금은 ‘똥돼지’ 키우던 흔적만 남아있는 옛날 화장실을 간혹 볼 수 있다.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동물이다. 돼지들이 입에 지푸라기를 물고 우리 안을 뛰어다니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 불거나 폭풍우가 다가오는 징조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해 질 무렵이 되면 잠자리에 볏짚 이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 돼지를 관찰하면서 봤던 행동 특성에 이런 영리함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또 돼지는 생각보다 더 깨끗한 동물이다. 돼지들은 배변 장소와 잠자는 장소를 완벽하게 구분할 줄 아는 동물이다. 다만 돼지들이 더럽게 보이는 이유는 진흙 목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돼지는 땀샘이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체온 조절을 위해 몸에 진흙을 잔뜩 묻히게 되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지저분해 보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돼지가 더럽다는 인식은 인간이 축사 청소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다. 원래 야생 돼지는 늪지대처럼 물이 풍부하고 시원한 곳에서 살던 동물이다. 알고 보면 진흙이 사라진 축사에서 체온 조절을 하기 위해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 뒹굴었던 것이다.

2015년 국제학술지인 <비교 심리학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돼지는 침팬지에 견줄 만큼 뛰어난 인지능력을 가진 동물이라고 한다. 여러 연구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돼지는 학습능력이 유인원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탐욕스런 사람, 식탐 많은 사람을 가리켜 ‘이 돼지 같은 놈’이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돼지 입장에선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돼지는 먹이 먹는 모양이 그래서 그렇지 전혀 탐욕스럽거나 식탐 많은 동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돼지는 개보다 훨씬 뛰어난 후각을 지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보다 뛰어난 후각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요리에서 최고의 재료가 된 송로버섯 찾는 일에 돼지가 이용되는 이유다. 야생 멧돼지가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데 발달된 후각을 이용해 최상품만 골라서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키운 옥수수를 싹쓸이한 돼지 가족이 있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약 천 여 평에 달하는 밭에 키운 옥수수를 죄다 넘어뜨려 알맹이만 쏙쏙 빼먹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잘 익어 상품으로 장에 내다 팔만큼 좋은 것들만 먹어버렸다. 2m 정도 되는 가지에 달려있는 옥수수가 정확히 익었는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는 후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마도 마찬가지인데 맛있는 고구마와 맛없는 고구마를 이리저리 섞어서 심어놓았는데 맛없는 고구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맛있는 고구마만 코로 파헤쳐 먹었다.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밭을 보면서 허망한 마음이 들기 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을 만큼 멧돼지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었다.

가축화된 집돼지들도 멧돼지가 지닌 야생성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데 새끼돼지들을 귀엽다며 손으로 들어 올리거나 잡으면 십중팔구 악을 쓰며 울어댄다. ‘돼지 멱따는 소리’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돌적이란 말도 돼지의 앞만 보고 내달리는 특성에서 나온 말이다. 야생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와 소동을 피우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 말에 ‘돼지가 화내면 호랑이도 피한다’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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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많던 돼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 식당가에 가보면 거의 한 집 걸러 하나씩 돼지를 파는 곳이 있는데 말이다. 시골에서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키우던 돼지들은 1980년대 무렵 대부분 사라졌다. 반면에 돼지 수요는 그때에 비해 4~5배가량 늘어났다.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처음에는 수백 마리 정도 키우는 소규모 돼지 축사로 시작되었던 것이 지금은 수천, 수만 마리 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톨’이라는 창살 기계가 키운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은 돼지 축사에 접근할 수도 없다. 구제역이라도 발생하는 날이면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소들이 ‘살처분’ 대상이 되고 만다. 대형 돈사가 있는 지역 마을 사람들은 극심한 악취로 고통받는다. 우리 고향 동네도 마찬가지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숨쉬기 조차 힘든 상태가 된다. 돼지들의 행동 특성이 깡그리 무시된 대형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 때문이다. 돼지를 어떻게 키워 고기로 만드는지를 알고 나면 더 이상 먹기가 힘들어질 정도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돈을 위해 돈이 사육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도 동물 복지 개념이 하루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아버지들의 아버지>란 소설에서 원숭이와 돼지의 결합으로 인간이 탄생했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과 참 가까운 동물이 돼지다. 사람의 장기와 돼지의 장기는 아주 닮았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비슷하다. 황금돼지해인 올해. 국제 이종 장기 이식 학계는 세계 최초로 돼지에서 떼어낸 췌도와 각막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먹을거리 돼지와 사람의 관계가 참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다산과 풍요, 복을 기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동물.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소비하는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돼지. 사람에게 모든 걸 아낌없이 주는 돼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 사랑하며(?)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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