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연해주 정부청사에서 진해의 HK조선과 러시아 베르쿠트 그룹의 자회사인 슬라반카 조선소는 한-러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HK조선은 이 법인을 통해 향후 최소 16척 이상의 어선을 건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대형조선사들이 러시아 조선시장에 진출하여 선박 수주를 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중소조선사가 러시아기업과 합작하여 선박을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 형태가 합작일 뿐만 아니라 선박건조 역시 양국의 협력과 합작으로 진행되면서 국내에서 공정의 대략 70%를 건조한 이후 러시아 현지에선 30% 정도의 조립공정을 거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시장 수요에 맞춘 선박건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산업적 추격에만 우리 조선업의 미래를 재단하고 평가할 게 아니라 우리 조선업 스스로 활로를 찾으며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확인된다. 조선업에서 미래를 논하려면 임금경쟁력만 앞세운 저가 수주경쟁에 매몰된 건조선박의 톤수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고급 기술력을 지렛대로 하여 틈새시장의 확대라는 방식이 유의미하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분명 기대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낮은 실현가능성을 높이는 건 이윤보장을 우선하면서 각종 세제 혜택을 앞세우는 정책적 유인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좀 높은 수준의 정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내 조선기업의 러시아시장 진출의 이면에는 실제 존재하는 국가적 경쟁구조라는 정치적 함수관계가 실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고 제어하려는 정치적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산업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동반자로 우리를 선택할 개연성이 높아지게 되고, 바로 이것이 중소조선소들의 합작이라는 사실로 드러났다고 볼 수도 있다. 중소조선소의 러시아시장 진출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정책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동북아에서 산업적 협력과 상생관계 구축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사실로 구체화하고 현실의 모양으로 확인된다는 사실은 시대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