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사방해 유죄 확정 이어
기소된 67명 중 고작 소수 복권
"국가폭력 반성 않고 생색내기"

"아이고, 지랄 맞다. 우찌 나라가 이럴 수가 있노."

정부 특별사면 소식을 듣고 한 주민이 이같이 분노했다. 정부는 26일 발표한 '3·1절 100주년 특별사면'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다 형사처벌을 받은 주민 중 5명만 '복권' 조치에 포함했다.

법무부는 이날 △일반 형사범 4242명 △특별배려 수형자 25명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 107명 △국방부 관할 대상자 4명 등 모두 4378명을 특사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 9명은 한 집에 모여 특사 소식을 기다렸다. 모두 사면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모인 주민 9명 가운데 4명이 최근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집행유예)을 확정받았다. 범법자 낙인을 받은 셈이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 대법원은 지난 2013~2014년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방해한 혐의(상해·강제추행·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재물손괴·폭행 등)로 기소된 주민 10명의 상고를 기각했다.

밀양송전탑 공사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반대 주민과 연대자 등 기소된 67명 가운데 14명이 징역형(집행유예)을 받았고, 47명이 벌금형, 6명이 선고유예, 1명(당시 미성년자)이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무죄는 4명뿐이었다.

부부가 나란히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은 이남우(77) 씨와 한옥순(72) 씨는 "당연히 모두가 사면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를 듣고 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또 누구는 복권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 26일 평밭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정부 특별사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김희곤 기자

이들은 "우리는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건강 위협을 받고, 재산 가치가 떨어졌으며, 범법자가 되고, 공무를 방해했다고 벌금을 내야 했다. 우리가 사람을 죽였나, 칼을 들었나, 총을 들었나.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나"라며 고통스러워했다. 정임출(78) 씨는 "아직도 송전탑을 보면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주민들 법률지원을 해온 변호사와 단체들은 정부 발표에 대해 '생색내기 사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은 "밀양 송전탑 사태는 생존권을 지키고자 했던 주민을 공권력이 무차별로 진압한 국가폭력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반성과 적폐청산 차원에서 전원 사면해야 마땅했음에도 주민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12년 응어리 풀 길 없어 =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주민들은 지난 12년간 한이 맺혔다. 주민들은 '국가폭력'에 무너졌고, 보상금을 놓고 벌인 찬반 갈등은 수십 년 동안 유지됐던 마을공동체 해체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응어리를 풀 길이 없고, 상처도 치유받지 못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지난 2007년 정부가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전~창녕군 북경남변전소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승인하고, 2008년 7월 주민들이 송전선로 백지화를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하면서 시작됐다. 주민과 한국전력공사는 수십 차례 대화했지만, 평행선이었다.

갈등이 이어지던 중 2012년 1월 산외면 한 70대 주민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해 숨졌다. 이듬해 12월에도 상동면 한 70대 주민이 음독해 숨졌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현장에 움막을 세워놓고 농성을 벌였다. 농성장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2014년 6월 11일 경찰과 밀양시 공무원들은 주민들을 끌어내고 강제해산했다.

▲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당시 경찰이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움막에서 알몸인 주민들을 끌어내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극렬한 갈등 속에 진행된 행정대집행에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등 주민 9명, 수녀 6명, 연대자 3명 등 18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5명이 다쳤다. 밀양 송전탑 갈등 과정에서 모두 384명이 경찰에 입건됐다. 송전탑 공사는 2014년 11월께 마무리됐고 이듬해 운전을 시작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와 법률지원단은 진상조사와 정부 공식 사과, 또 다른 송전탑 사태 방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사람이 2명 죽었다. 봄이 오면 청와대로 가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달라고 촉구하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지난해 3월 감사원에 공익감사 22개 항목을 청구했지만, 19건을 기각당했다. 3건에 대해 감사가 진행 중이지만 해를 넘겼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도 지난해 2월 조사를 시작했지만 역시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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