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노동자·협력사 피해 불 보듯
자치단체장들 어정쩡한 태도 유감

왜 하필 지금이고, 왜 하필 현대중공업인가?

대우조선해양은 그동안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이고 한편으로는 수주 노력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막 정상화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LNG운반선 발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그 발주를 대우조선을 비롯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싹쓸이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그런 이 시점에 왜 굳이 당장 현금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닌, 합병을 통한 매각을 하려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문제는 현대중공업이다. 정부가,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이 지금 아무리 경남 지역에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한들, 그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같은 업종 거대기업이 합병을 하면 필연적으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이치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합병되면 기존 대우조선에 납품하던 업체들은 거래선이 끊어지거나 거래 규모가 줄어들 것이 뻔하다. 크고 작은 대우조선 하청업체 수백 개가 도내 곳곳에 있다. 창원에 있는 HSD엔진은 매출의 40%가 대우조선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 있는 STX엔진도 사정이 비슷하다. 현대중공업은 자체적으로 엔진을 생산하고, 자회사를 통해 기자재 80%를 조달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GM에 넘어간 한국지엠이 미국 본사의 신차 라인 배정에만 목을 맬 수밖에 없게 된 처지를.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보고하고 허락받지 않으면 만원짜리 한 장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GM은 정부까지 나서서 반대하는데도 군산공장을 폐쇄해버렸다. 나중에 다시 조선산업이 어려워지면 거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경남에서는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대우조선 사측이나 협력업체·납품업체들은 벌써부터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반대한다'고 말 한마디 속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큰목소리를 냈다가는 합병 후에 거래선이 뚝 끊어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거제시장을 비롯해 경남 도내 자치단체장들의 자세는 어쩐지 뜨뜻미지근하다. 여당 시장이든, 야당 군수든 지금은 뒷짐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거제시든, 창원시든, 혹은 인근 시·군이든 대우조선 납품업체, 혹은 2차벤더, 3차벤더가 있는 자치단체는 지금 당장 정부에 '지금은 안된다', '현대중공업은 안된다'라고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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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을 통해 조선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정부와 산업은행, 서울 언론이 서울에서 지방을 내려다보는 시각일 뿐이다. 경남에서까지 그 논리에 매몰되면 안된다. '귀족노조' 소리를 듣는 노조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대우조선 매각은, 하더라도 정상화한 뒤에 제값 받고 매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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