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판, 피해 후 정황 근거로 무죄·감형
"성인지적 관점 아직 부족하다" 지적 일어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단지 피해를 밖으로 드러내는 '용기'에 그치지 않고 가해자에게 채찍을 가할 수 있는 운동으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법정에서는 성인지적 관점에 따라 판결하기보다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이후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 주요 기준점이 되는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성인지적 관점이란 남성과 여성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두고 각종 제도와 정책을 검토하는 것이다. 성차별 개선이라는 문제 의식에 기반해 각종 제도나 정책에 포함된 개념이 특정 성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 관념이 개입돼 있는지 등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관점이다.

지난 12일 미투 폭로로 재판에 넘겨진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가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무거운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청소년 강간, 위계 등 간음·추행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조 씨는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2명 중 1명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했다.

이경옥 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은 "번작이 사건 1심에서 피고인 변호사는 피해자의 남자관계와 피해 이후 행세를 많이 물었다. 1심에서 조 대표가 무죄 선고받은 1건은 피해자가 결혼 청첩장을 보내는 등 친분을 이어간 행동이 주요하게 작용됐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피해 이후에도 사제 관계가 이어지는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피해 이후 관계를 단절하면 피해 주장에 신빙성이 있고, 단절하지 않으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추가로 제기한 조 대표의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1심에서 무죄 선고한 1건은 이번에도 피해 이후 정황을 근거로 성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가 선고된 피해자 1명의 진술과 이후 정황 등으로 봤을 때 1심과 마찬가지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으로 보기에는 신빙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여성계는 최근 미투로 재판에 넘겨진 창원대 무용학과 교수와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경찰 간부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벌금형에 그친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지난 20일 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창원대 ㄱ 교수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ㄱ 교수는 지난 2014년 11월 창원시 성산구 한 노래방에서 시간강사 신체를 만지거나 접촉하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도내 한 경찰서 ㄴ 간부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피해자 3명의 신체를 여러 차례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13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1단독은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이경옥 센터장은 "미투 운동 이후 법정에서 미흡하지만 의미 있는 판결을 함으로써 가해자가 되면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업무상 전화를 하는 사이 신체 일부를 만지는 행동이 고의성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벌금 700만 원에 그치고, 자제력을 잃었단 이유로 감형해 500만 원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평생 고통을 느끼는 데 반해 법정은 가해자 처지에서 감형 근거를 제시하고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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