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환 박사님을 처음 뵀던 무섭고 어두웠던 그날로부터 16년이 흘렀습니다. 매미가 마산을 할퀴고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그날 우린 만났습니다. 보석과 같은 두 아이를 보내면서 우린 흐느꼈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서로 위로했습니다. 그동안 형님처럼 때론 친구처럼 지내면서 소탈한 성격과 남을 배려하시는 자상함으로 정말 서로 아픈 마음을 달래며 지냈습니다.

함께 제주도 힐링여행을 떠나 그 힘든 순간을 견뎌내려고 애썼고 추모식을 16년간 주관하시느라 정말 많은 노력 하셨습니다. 이 마산을, 이 사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자 애쓰셨습니다. 임과 함께 마산을 걸으면 3명 중 한 명은 인사를 하더군요. 그만큼 정 박사님께서는 학교 스승으로 이곳 마산을 가꾸셨고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이 유서깊은 마산에서 키우셨습니다.

그런 마산에서 이제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마산은 정 박사님의, 아버님의 애국심이 숨 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정말 애쓰셨습니다. 임이 노력하고 힘써주신 덕분에 추모비, 방재언덕도 생기고 체험관도 곧 준공한다고 합니다. 같은 역경을 당한 대구지하철 유족들을 위로하시고자 매년 먼 길을 마다치 않으셨고, 주변에 어려운 환경 속 학생을 위해 장학금도 주선하셨습니다. 가족행사를 위해 미국까지 오시고 또 아이들이 한국에 오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만나서 헤어질 땐 꼭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셨습니다. 포스텍 현은배 행사에 매년 꼭 참석해 축사를 해주시고 작년 현은 강좌에도 아프신 가운데 와 주셨습니다. 포스텍 학생들도 정 박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모든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그리고 마산 시민에게 사랑을 줬던 임은 이렇게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그렇지만 정 박사님 열정과 사랑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고귀하신 뜻을 잊지 않을 겁니다. 이제 정 박사님이 이루지 못한 꿈은 남은 후손들이 꼭 이루겠습니다. 하늘에서도 그 소탈한 웃음으로 저희를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남은 현은 아빠 서의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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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 때 신마산 일대에 밀려든 바닷물과 원목이 인근 건물 지하를 막아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정계환 회장의 아들 시현(당시 28세) 씨와 결혼을 약속한 서의호 교수의 딸 서영은(당시 23세) 씨가 숨졌다. 정 회장(81)은 지난 16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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