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빼돌린 보이스피싱 중간책…횡령죄일까 아닐까
경남경찰 3명 구속

"이 판에선 누구도 믿지 마라."

보이스피싱 조직을 등쳐먹은 이들이 붙잡혔다.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전기통신금융사기)로 ㄱ(26) 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그런데, ㄱ 씨는 후배 ㄴ씨와 짜고 보이스피싱 조직에 돈을 전달하지 않고 뒷주머니를 찬 것으로 밝혀졌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조직을 속이고 사기를 친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보이스피싱 조직은 불특정 다수에게 쇼핑몰을 가장한 허위 결제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문의하는 전화가 오면 검사를 사칭하는 조직원과 통화하도록 유도했다. 피해자에게 "통장이 범죄와 관련돼 있으니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현금화한 돈을 전달하면 안전하다"고 속여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현금을 받아 챙기는 수법이었다.

보이스피싱 모집책 ㄱ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 ㄴ씨를 조직에 가담시켜 1000만 원 이하 금액은 조직에 송금해 신뢰를 쌓고, 나머지를 가로채기로 짰다. 현금 수거책 ㄴ 씨는 2회에 걸쳐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며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받아 조직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ㄱ·ㄴ 씨는 지인 ㄷ 씨를 수거책으로 끌어들여 한 피해자로부터 1950만 원을 받아 '꿀꺽'했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유사 사건을 찾을 수 있다. 내용은 보이스피싱 조직 책임자가 사기에 이용할 계좌(대포 통장)를 개설해 조직원에게 현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직불카드를 줬는데, 조직원이 대포통장으로 송금된 피해자의 돈을 뽑아 썼다면 횡령죄를 물을 수 있는지다.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마음대로 송금·이체된 돈을 찾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 행위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 내 중간 단계에서 돈을 가로채는 일은 더러 있지만 점조직(구성원 사이의 체계나 연관 관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짜진 조직)이기 때문에 확인은 쉽지 않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혼선을 주고자 대형상점 사물함에 카드(현금)를 두거나, 전달자는 범행 가담 1회 아르바이트에 그치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한 관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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