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깃들어 삶의 버팀목 되는 공간들
낡고 오래됐다고 다 밀어버려야 할까

"우리집의 제일 높은 곳 조그만 다락방 /넓고 큰방도 있지만 난 그곳이 좋아요/높푸른 하늘품에 안겨져 있는 / 뾰족지붕 나의 다락방 나의 보금자리".

70년대 말 '논두렁 밭두렁'의 노래 <다락방>의 한 소절이다. 다락방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형제 많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은 사다리로 올라간 다락방. 허리를 온전히 펼 수 없을 만큼 낮은 천장에 머리를 찧기도 했지만, 밤이면 창밖 풍경에 취했다. 오르막 골목에 세워진 가로등 몇 개와 달빛, 별들, 멀리 바다에서 반짝이는 배들의 불빛들이 보이는 전부였다. 하지만 꾸었던 꿈은 컸다. 배 몇 척으로 수천의 왜군을 물리친 여자 이순신 장군도 탄생시켰고, 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운동가 여자 김구도 다락방에 살았다. 분명 우리에게는 '언니'인데 왜 '유관순 누나'라고만 하는지 역사가들에게 불만도 토로했다. '유관순 열사'로 바뀐 것이 설마 다락방에서 친구와 나누던 그 이야기 때문일까.

MBC경남에서 방송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낡은 집>을 오랜만에 보았다. 4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요즘에 의미가 새롭다. 불이 나고 공원으로 만들어진다던 집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는데, 거창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란 소설가 지하련의 집이다. 신여성 지하련은 조국을 찾기 위해 오빠들과 애쓰며 주변 청년의 구애를 물리쳤고, 폐결핵 치료차 마산에 온 시인 임화의 아내가 되었다. 마산에서 신혼집을 차렸고 서울살이에서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결핵을 옮아 홀로 마산에 내려와 요양하게 되는데, 바로 그 시절에 살던 집이다. 외롭고 쓸쓸하게 삶을 견디던 곳, 마산 산호리에 있는 집. 이층집이지만 2층은 거의 다락방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집에서 지하련은 소설가가 되었다. 은둔하며 요양하던 암담한 시간에 글을 썼다. 그를 견디게 해 준 건 무엇일까. 사상일까, 임화일까. 2층 창가에 서면 마산 앞바다가 그의 품에서 파도로 철썩였을 것이다. 지하련을 지켜준 것은 어쩌면 낡은 집 2층이지 않았을까. 마치 '다락방' 같은…. 지금 이 집은 아파트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다른 다락방도 대부분 사라졌다. 남아있다 해도 대부분 철거되거나 사라질 운명일 것이다.

'도시개발', '도시재생' 같은 단어가 국토를 휘젓고 다닌다. 사람들은 개발논리를 들이대며 낡고 오래된 것은 싹 밀어버리고 새 건물, 새 길을 내는 일을 좋아한다. 계산기를 두드린다. 나무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가 배운 가장 쉬운, 돈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돈 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낡고 오래된 도시를 싹 밀어버려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삶의 흔적조차 깡그리 사라지게 해야 할까. 시민 자격으로 해야 할 일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시간을 견뎌온 다락방들부터 챙겨보면 어떨까. '다락방 살리기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여도 좋겠다. 물론, 낡은 집이나 작은 다락방이 그 자체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살아야 한다. '낡은 집'(살기 편하게 최소한으로 개조된)에서 사는 일이 행복하고, 다락방에서 노는 즐거운 기운이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작은 다락방이 좋고, 낡아도 추억이 있는 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면 된다. 흰머리 땋은 채로 '조그만 다락방'에서 마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책 읽고 음악 듣고 사람들도 맞이하고 싶다. 이런 것은 '도시재생 뉴딜'에 해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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