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임금보전 방안은 미흡
민주노총 "주도권 사측 손에"

노·사·정이 마라톤협상 끝에 탄력근로제 합의점을 도출했다. 문재인 정부 첫 사회적 타협을 이뤄냈지만 '노동'보다 '경영'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19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경영계가 요구한 탄력근로제 확대와 휴식시간 의무화를 통한 건강권 보장, 임금보전 방안 마련 등 노동계 요구가 반영됐다. 하지만 합의내용을 보면 초과 노동 금지 원칙이 빠지는 등 여러 과제가 남았다.

◇노동계 요구 일부 포함 = 경사노위 협상 과정에서 노동계는 11시간 휴식시간 의무 보장과 더불어 일별 노동시간 한도 설정, 정부 과로인정 기준 초과금지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과로인정 기준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노동자가 12주 연속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해 일했을 때 업무와 질병 연관성이 높다고 본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하면 이 기준을 쉽게 초과할 수 있는데 이를 막을 방도는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또 탄력근로제 도입요건 완화는 구체적으로 명문화됐으나 노동자 건강권 보장과 임금보전은 선언적 문구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계는 임금보전과 관련해 사업주 처벌 조항을 제시했는데 신고 의무 위반에 대한 조항만 포함됐다. 합의문 조항별로 노동자 대표와 사측 합의 또는 협의를 규정했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사측 입맛대로 시행될 수도 있다.

구체적 임금보전 방안도 없다. 합의문 4항을 보면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시간제 오남용 방지를 위해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신고하지 않더라도 과태료만 내면 돼 강제력이 없다.

◇'6개월 꼼수' 우려 = 탄력근로제를 할 때 특정 기간 1주 평균 노동시간은 52시간을 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경영자는 3개월 동안 주 64시간 일을 시킬 수도 있고, 단위 기간을 활용하면 6개월 내내 64시간 일을 시키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예컨대 '1분기(1∼3월) 주 40시간, 2분기(4∼6월) 주 64시간, 3분기(7∼9월) 주 64시간, 4분기(10∼12월) 주 40시간'으로 조정하면 상반기 6개월과 하반기 6개월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은 52시간이기 때문에 합법이 된다. 노동자 처지에서는 4월부터 9월까지 1주에 64시간씩 일해야 한다.

주 64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토요일에도 4시간을 더 일하는 꼴이다. 뇌혈관·심장·근골격계 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를 결정하는 노동부 기준도 초과한다. 노동부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노동계 주장대로 탄력근로제 확대는 '과로사 합법화'라는 비판과 맞닿는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합의 후 "경노사위 타협은 노동시간 유연성은 대폭 늘렸고, 임금보전은 불분명하고,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넘겨버린 개악"이라며 "노동시간 확정을 노동일이 아닌 주별로 늘린 것이 심각한 문제다.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는 것에 더해 노동일자가 아닌 주별로 노동시간을 정하도록 바꿔 건강권을 침해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또 "임금보전 방안도 사용자에게 백지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용자는 단위기간 확대와 주별로 노동시간을 정하고, 강제력 없는 임금보전 방안 등 원하는 내용 대부분을 얻었지만 노동자는 건강권과 자기주도적인 노동, 임금을 잃었다.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마저 무력화했다"며 3월 6일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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