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해수욕장으로바닷가 마을서 보낸 닷새
가게 손님으로 인연 맺은 손보리·씨몽 부부 집 찾아
특이한 스포츠카 렌트해 지역 구석구석 구경
정 때문일까 더욱 따뜻했던 나날

프랑스 툴롱은 유명관광지 니스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나라 진해랑 비슷한 느낌의 '해군도시'이다.

툴롱에는 '씨몽' 씨가 살고 있다. 씨몽 씨의 아내는 한국 사람인데 이름이 '손보리'이다. 씨몽 씨와 보리 씨 부부는 올봄 우리가 유라시아 횡단을 시작하기 몇 달 전 내가 운영하는 김해의 스시 가게에 손님으로 왔던 분이다. 나는 그때 유라시아 횡단에 관한 계획을 알렸고, 씨몽 씨는 꼭 여행하다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 들르라고 당부했었다. 그래서 툴롱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씨몽 씨의 집이었다.

두 분은 약 20년 전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에 살았지만 자주 비가 오는 날씨를 피해 남부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보리 씨는 "우리가 계속 파리에 살았으면 파리 관광을 자세히 시켜 주었을 텐데. 이사를 오게 되어 어떡해요"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사실 지훈이와 나는 괜찮았다. 나름 즐겁게 파리 관광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 프랑스 툴롱 골목길을 산책하다 찍은 기념사진. /최정환 시민기자

◇보고 느끼면 돼

두 분의 직업은 미술 아티스트이다. 파리에서 전시회도 많이 열었다고 한다. 우리가 툴롱에 도착한 날은 마침 씨몽 씨가 친구의 미술 전시회에 초대된 날이었다.

"지훈 예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왔으니 갤러리에 한번 가 볼래?"

"마침 씨몽 아저씨 친구가 전시회를 여는데 구경삼아 다 같이 가 보자."

보리 씨가 씨몽 씨 이야기를 거들면서 지훈이에게 말했다.

"이모, 저는 아직 예술이 뭔지 잘 모르고, 또 제가 나이가 어린데도 가도 되나요?"

"그럼! 나이랑 무슨 상관이람. 그냥 전시회에 가서 네가 보고 느끼면 되는 게 예술이야."

그렇게 우리들은 갤러리가 있는 툴롱 시내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갔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니 재미있었다.

동양인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 시내버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는 시선이 많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서 버스에서 내려 갤러리로 걸어가는 동안 지훈이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구경했다. 씨몽 씨를 따라 상점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분수대가 있는 조그만 광장이 나왔다. 갤러리는 광장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 전시회를 오픈한 작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인사를 나눈 뒤 작품 설명을 들었는데 눈에 띄는 미술품이 몇 점 있었다. 녹색 맥주병들이 벽면 가득 철조망으로 고정돼 있는 것이 신기했다. 평범한 맥주병이 작품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누군가 전시된 작품이 좋아 구매를 하게 되면 구매자가 원하는 장소에 작품이 똑같이 설치된다고 했다.

갤러리는 미니바와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전시회 관람 후 우리는 바로 옆 미니바로 향했다. 많은 예술인이 그곳에서 칵테일과 맥주,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날 처음 만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국을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터키를 거쳐 유럽까지 온 이야기를 듣고는 다들 엄지를 치켜세우며 "판타스틱!"을 외쳤다. 갤러리 오픈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씨몽 아저씨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렌트 오픈카

다음날 아침.

"지훈아 해수욕하러가자."

"보리이모 해수욕장이 가까이 있어요?"

"너 몰랐어?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가 해수욕장이야."

씨몽 씨와 보리 씨 집 바로 앞에 작은 해수욕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조그만 수건 하나를 모래밭에 펴고 그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씨몽 씨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겨 놓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3일간 자동차를 빌렸다. 한국에서는 렌터카 업체를 통해 차를 빌린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일반인들도 자가용을 사용하지 않을 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대여할 수 있었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환경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스포츠카를 빌렸다. '르노'라는 프랑스 유명 자동차 회사에서 단 400대만 생산한 후 단종시킨 아주 오래된 오픈카였다. 특이하면서 뭔가 모자란 자동차 모습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최고였다. 유럽에 다니다 보면 오래된 자동차들이 많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관리가 잘돼 있었다. 모양이 예쁘고 특이했다. 낡은 것이라도 고쳐 쓰고 나눠 쓰는 게 유럽의 문화인 것 같았다.

▲ 특이했던 오픈카. /최정환 시민기자

지훈이와 나는 씨몽 씨 부부와 함께 오픈카를 타고 툴롱 일대를 구석구석 구경했다. 철 지난 누드 비치에도 가보고 오래된 성에 올라 시내 전경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름 모를 바닷가에 들러 신나게 수영도 하고 레스토랑에 들러 프랑스식 요리도 먹었다. 어디를 가나 식사를 할 때 항상 와인과 함께였다.

하루는 내가 아침에만 열리는 시장에서 생선을 구입해 와 요리를 해 주었다. 물론 와인과 함께였다. 집 근처 시장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었는데, 씨몽 씨는 가는 곳마다 지훈이와 나를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가게 사장님들이 서비스로 음식을 많이 주셨다.

5일을 툴롱에서 보내고 씨몽 씨와 보리 씨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산 보리 씨는 그동안 잊고 지내 온 한국이 그리웠나 보다. 돌아서는데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다음을 기약해야만 한다. 내후년에 가족 친지들을 보러 한국을 방문할 거라고 했다. 그때 꼭 우리 집에서 지내고 우리 가게에도 들르기로 했다. 따뜻한 프로방스의 툴롱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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